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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Carlo Carra)-(1881~1966)

카라의 1914년작인 [애국적 선언]은 큐비즘의 콜라주가 어떻게 미래주의 강령에 맞게 상용 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글자들은 정치적인 의미를 확실히 하고 있는데, 마치 소리나 말처럼 당시 고조되고 있던 전시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그는 여기서 왕과 군대를 찬양하였고 사이렌과 군중의 소음을 시각적으로 나타냈다. 이 작 품이 그 해 8월 1일 [라 체르바]지에 실린지 불과 며칠 후 독일은 연합군에게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건물의 페인트공, 실내장식가, 프레스코 화가로 일했었다. 1910년 정치적 주제를 갖은 분할 주의 풍의 작품을 그린다. 파리를 여행하고 돌아온 후, 이 작품의 공간구성을 입체주의적 분 할 시각으로 재구성하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동안 카라는 형이상학 회화의 유파를 활성화시키며, 불안감을 유발하는 도상을 수용하여 아리러니나 허무주의성향이 배제된 작품을 그린다. 카라는 '형이상학적 회 화장르'를 신비적-고대적인 양식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순수파미술과 프리미티비즘미술을 종 합하고자 하였다. 동시에 그는 예술과 정치의 만남을 지향하는 미술이론을 창안해내고 이탈 리아의 오래된 전통에 뿌리박은 조형적 가치로 복귀할 것을 주장한다.

 

카메라 옵스쿠라 Camera Obscura(라)

라틴 어에서 따온 말로서 원뜻은 '어두운 방' 이라는 뜻. 일정한 사물이나 정경의 상을 넓은 종이나 유리 등에 투사시킴으로써 그 상의 윤곽을 정확히 그려내는 데에 사용하는 기구를 말한다. 빛을 투사할 수 있는 조그만 구멍을 통해 투사된 빛이 반대편 벽면에 사물의 역전 된 상을 그림자로 남기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 카메라와 비슷하 다. 역전된 상을 재역전 시키기 위해서 흔히 거울을 사용하는데, 이럴 경우 그림자는 원물체의 모습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카메라 옵스쿠라의 원리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며, 중세 때는 천문학자들이 이 원리를 이용하여 일식 현상을 관찰하기도 했다. 바자리의 문헌을 보면 알베르티가 이와 비슷한 기구를 작품제작에 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 는 기록이 나오며, 고우잉(L.Gowing)이 쓴 '베르메르'에는 베르메르가 이 기구의 도움을 받 고 있다는 것이 상세히 분석되고 있다. 특히 18세기에는 이것이 붐을 이룬 적도 있다.

 

카운터프루프 Counterproof (영)

동판화 등을 교정 인쇄하는 기법. 판면(板面)으로 지면(紙面)에 직접 인쇄한 화상(畵像)의 잉크가 마르기전에 별도의 종이로 화면을 포개어 압착기로 눌러 복제하는 것을 말한다. 이 방법은 원판의 수정 등 제판(製版)의 작업에 용이하다. 이때 그림이 거꾸로 인쇄되는 것 이 특징이다. 이것은 작자 자신이 자기의 작품을 거꾸로 봄으로써 신선한 인상을 받기 위해 서 만드는 것도 있으나, 원판의 위작을 만들 때 간편한 방법으로 이용된다. 그러나 이런 위작은 상이 뒤집혀 나타나기 때문에 쉽사리 구별될 수 있다. 옵셋 인쇄도 카 운터프루프로 구별될 수 있다.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1866~1944)

비정형적이며 서정적, 주정적이다. 칸딘스키는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법률학과 경제학을 공부하였고 30세가 되던 해 인 1896년 뮌헨으로 가서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입문한다. 1910년에 그린 [기수]가 제작되던 때를 같이해 수채화에 의한 추상화를 시도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또한 그 자신의 예술관을 이론적으로 뒷바침 해 줄 [예술에 있어서의 정신적 인 것에 대하여]란 책을 1912년에 출판한다. 1912년에 뮌헨에서 결성된 청기사파의 중심적인 멤버가 된 그는 마르크와 함께 신비롭고도 자연주의적인 회화를 제작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기수]연작 중의 하나이다. 강렬 한 색채의 발언과 움직임 및 대상의 극단적 자기화 의지는 거의 추상화에 가깝다. 앞서 소개한 그의 이론서에서 그는 자신의 추상적 의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색채는 건반이다. 눈은 망치이다. 영혼은 많은 줄을 가진 피아노다.예술가란 그 건반을 이것저것 두 들겨 목적에 부합시켜 사람들의 영혼을 진동시키는 사람이다." 칸딘스키는 소재가 사라지는 '추상미술'에 이르기까지 혁혁한 변모를 보이게 된다. 1908년 이때의 그의 작품을 보통'표현주의'로 구분하고는 있으나 그려진 소재에 관련해 볼 때 색채가 독자성을 보이고 있음과 또한 '음악적'구성이 시각적인 것보다는 심리적인 효과 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한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1909년부터 칸딘스키는 그의 작품을 '내적 요구'에 의해 그려진 것은 '즉흥', 그려진 오브제 의 형태가 드러나는 것은'인상', 오랜 숙고 기간에 걸쳐 구성된 것은 '구성' 의 세가지로 분 류, 제목을 붙인다. 이렇게 그는 '색채의 원초적 가치'가 회화 언어의 핵심을 이루는 '순수 미술'의 개념을 창 시했고 1910년 최초의 추상화를 발표한다. 그러나 1913년까지는 완전히 비구상으로 전이되 지 않은 회화내의 정신성을 중시하는 과도기적 작품을 발표한다. 바우하우스에서 칸딘스키는 아무런 배경적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은 형태들로 충만된 상징성 을 표현해낼 수 있다는 이론을 발달시켰으며 그의 작품은 서정성이 담긴 기하학적 형태로 채워지게 된다. 1933년 이후 칸딘스키의 색채는 더욱 유연해지고 매끄럽고 윤기나는 색면을 구사한다. 기하 형태들은 보다 더 부드럽고 유연하게 변하며 마치 동물의 촉각과도 같은 모습을 띠기도 한 다. 칸딘스키는 20세기 미술에 있어 독보적인 정신의 모험을 이끌어 온 천재중의 한명으로 손꼽 힌다. 칸딘스키는 미술도 음악처럼 점, 선,. 면 등과 같은 순수한 조형 요소들을 결합하여 하나의 작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그는 `음악파` 라는 별칭도 갖게 되었다.

 

캐리커쳐(caricature)

시국 풍자나 인생의 유머를 다룬 모든 회화의 총친. 흔히 과장법이 취해지며 풍자, 우의, 해 학 따위를 내용으로 한다. 영어로는(특히 미국의 경우). 인쇄매채에 발표되는 정치 풍자화를 카툰이라고하여 이것과 구별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풍자화 이외에 만화라는 명칭이 있다. 캐리커쳐의 기원은 멀리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풍자화가 하나의 장르로 서 확립을 보게 된 것은 17∼18세기이며 프랑스의 칼로, 영국의 호가드, 롤랜드슨 등에 의해 서였다. 스페인의 화가 고야의 환상적인 우의화, 19세기 프랑스의 도미에, 그랑비유, 모니에 등의 정치·사회 풍자화에 의해 근대 만화는 전성기를 맞는다. 20세기에는 독일의 프리츠 마인하르트, 프랑스의 J. 페네, 영국의 로, 베이크먼, 미국에서는 소글로프, 스타인버그 등이 있다.

 

컨템퍼러리 스타일(contemporary style)

1945년에서 1956년의 기간 동안 '컨템퍼러리'라는 단어는 많은 영국의 비평가들이 그 시대 의 미술, 건축, 그리고 디자인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예를 들면 컨템퍼러리 미술 재 단이 1947년에 설립되었고, 허버트 리드의 <컨템퍼러리 영국 미술>이라는 책이 1951년에 출간되었다. 컨템퍼러리 양식의 특징은 응용미술에서 대단히 돋보이는데, 그것은 명랑함, 쾌 활함, 미세함 등이다. 이러한 외양은 가구에서 검은 목재 대신에 얇은 금속 막대와 엷은 색 의 목재를 사용한 데서 기인하였다. 금속 가구는 다리에는 플라스틱 얼룩이 밝게 채색되어 있다. 이러한 것은 나움 가보, 콜더, 헤프워드의 조각에서 유래한 일종의 매너리즘이다. 벽지 와 직물 디자인에서는 눈 결정체, 관 모양 또는 길게 늘어진 육모꼴과 같은 기하학적 문양 이 선호되었다. 컨템퍼러리 스타일은 1951년 영국의 전시 행사에서 일반에게 보급되었다. 이 때 '페스티벌 양식(Festival Style)' 또는 '남부 은행 양식(South Bank Style)' 이라는 또다른 용어도 만들 어졌다. <디자인>이라는 잡지는 이 양식을 '새로운 영국 양식' 이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현 대 디자인의 권위자들은 페스티벌 양식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 러나 그들도 그러한 어휘가 쓰여지고 있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리차드 해밀튼은 이것을 컨 템퍼러리 스타일의 하위 등급으로 간주한다. 피터 쿡은 1592년의 디자인이 전후의 부산물의 혼합체(합판 제품, 소형 기계의 기술공학)와 30년대의 양식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한다. 많은 컨템퍼러리 스타일은 제품 디자인에 편중되어 있고, 그 외의 분야에서는 잘 활용되지 못하 고 있다

 

컴바인 페인팅(Combine Painting)

콜라주의 확대된 개념으로서 이차원 혹은 삼차원적 물질을 회화에 도입하려는 시도의 미술 운동. 컴바인 페인팅에서는 보통 이러한 물질을 캔버스, 벽, 기타 다른 표면에 덧붙인다. 미 국 미술에 있어서 'combine' 이라는 말은 로버트 라우센버그에 의해 정의된 것인데 그는 대 담한 회화 스타일에다 현대 미국 소비 문명의 폐기물들 - 만화, 콜라병, 종이, 나무, 고무, 금속, 천은 물론 박제된 동물이나 작동하는 라디오, 선풍기, 전구 -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추상 표현주의의 시적 표현과 현실에 잇닿는 물적 소재에로 접근하려는 다다적인 노 력의 융합으로 나타난다. 라우센버그의 '컴바인'은 1953년부터 1960년대 초까지 계속되었다. 이것은 1950년대의 미술에서 유행하던 폐물의 사용과 회화적, 조각적, 개념에 환경주의적 미 술을 융화시키려는 경향이 증가했음을 반영해 주는 것이다.

 

컴퓨터 아트(computer art)

컴퓨터를 이용해서 창조하는 예술. 통계적인 사항의 프로그래밍의 변화를 회화적 조합으로 표현하기 위해, 기호에 의한 자동적이고 기계적인 순차적 구조를 시각화하는 미술의 한 경 향을 말한다. 창작가의 표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연 신예술 분야로 알려지고 있으며, 대부분 은 기술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특질을 예술의 영역에 도입한다는 방향에서 예술적 표현이 행해지고 있다. 따라서 컴퓨터 미술가들은 처음에는 기술자로 시작하여 때샔로 자신의 작품 에서 표출되는 흥미로운 결과에 심취하게 되었다. 미국의 기술자인 윌리엄 A. 페터는 그 대 표적인 예에 속한다. 그는 비행기 조종실의 효과적인 배치를 위한 컴퓨터 드로잉으로 여러 가지 미술상을 수상했다. 컴퓨터 미술은 그 양식을 정의하기가 힘들다. 엄청나게 다양한 작품이 만들어지므로 어느 하나를 선택해서 모범을 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분야의 주요한 전람회는 '인공 두뇌 학의 우연한 발견 재능(Cybernetic Serendipity)' 으로서 제시어 레이차트에 의해 조직되어 1968년 런던의 현대 미술 협회에서 개최되었다. 슈뢰더는 '컴퓨터 미술 - 내일의 전야' 라 는 순회 전시회를 조직했는데, 1969년 하노버에서 처음 전시된 후 뮌헨, 함부르크, 오슬러, 브뤼셀, 로마, 그리고 토쿄로 옮겨갔다. 1970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을 위한 부문이 마련되었다. 미국에서 열린 전시회로는 1965년 뉴욕 하워드 와이즈 화랑에서 열린 '세계 컴퓨터 그래픽 전시회', 1965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추계 합동 컴퓨터 회의 ', 그리고 서부 미술 박물관 협회에 의해 개최된 순회 전시회가, 1966년 뉴햄프셔주 하노버 의 다트머스 대학에서 최초의 전시회를 가졌다. 컴퓨터 미술에는 전통적인 비평 기준이 적 용될 수 없으며 또한 인간의 손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몇몇 비평가들에겐 커 다란 방해물이 되어 결국 그들은 이것을 예술로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미래에는 미술을 애호하는 대중의 의견과 태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것 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성과 과학이라는 '두 가지 문화'를 독특한 방법으로 결합시킬 것 이기 때문이다. 헤르베르크 W. 프랑케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어떤 수단도 해낼 수 없었던 미술과 기술, 그리고 과학 사이의 상호 작용을 설명해준다.

 

코로 (Jean-Baptiste-Camille Corot,1796~1875)

프랑스의 화가. 파리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상업에 종사하였으나 1822년부터 미샤롱과베르탱에게 그림을 배웠으며, 1825년 이 탈리아에 유학하여 1827년 〈나르니 다리〉로 살롱에 등장하였다. 그 뒤에는 프랑스에 살면서 파리 교외의 바르비종을 비롯한 여러 곳을 찾아다니면서 많은 풍경화를 남겼다. 그의 예술은 사실주의와 낭만주의의 혼합이라는 시대 양식 속에 고전적 이상주의의 가미를 특색으로 하며, 부드러운 빛 속에 자연을차분히 담아 시적 정취를 풍기게 하여 19세기 자연 파의 대표적인 풍경화가로 꼽힌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샤르트르 대성당〉〈회상〉 〈진주의 여인〉 〈푸른 옷의 여인〉 〈샤르모아 부인상〉 등이 있다.

 

콜라주

본래 '풀칠', '바르기' 따위의 의미였으나, 전용되어 화면에 인쇄물, 천, 쇠붙이, 나무 조각, 모래, 나뭇잎 등 여러 가지를 붙여서 구성하는 회화 기법 또는 그러한 기법에 의해 제작되 는 회화를 가리킨다. 1911년경 입체파 시대의 피카소와 브라크는 화면 효과를 높이고, 구체 감을 강조하기 위하여, 화면에 그림 물감으로 그리는 대신에 신문지, 우표, 벽지, 상표 등의 실물을 붙여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의 파피에 콜레라는 기법을 개발해냈다. 콜라주는 여기에 서 발전한 것으로, 제1차 세계대전 후 다다이즘에 이르러서는 파피에 콜레가 확대되어 실꾸 러미, 모발, 철사, 모래 등 캔버스와는 이질적인 재료, 또는 신문·잡지의 사진이나 기사를 오려 붙여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조리한 충동이나 아이러니컬한 연쇄반응을 노리는 기 법으로 쓰이게 되었다. 즉 피카소나 브라크의 파피에 콜레는 순전히 화면의 미적 구성을 위 한 조형상의 한 수단이었지만, 다다이즘의 콜라주에서는 붙여지는 물체의 강세에 관심이 이 행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사회 풍자적인 포토 몽타주가 생겨났다. 또 막스 에른스트는 옛 이야기나 과학 서적의 삽화를 오려붙이는 수법으로 기상천외한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 >이라는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초현실주의적인 콜라주를 확립했다. 초현실주의의 콜라주는 기성품에 손질을 가하지 않고, 전혀 엉뚱한 물체끼리 조합시킴으로써 별개의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비유적, 연상적, 상징적인 효과를 노렸다. 한편 1960년대에서의 대중의 시각 속에 있 는 조형적 요소를 몽타주하여 작품 속에 짜맞춘다는 식으로 콜라주의 수법을 이용하였다

 

쿠르베 (Gustave Courbet,1819~1877)

프랑스의 화가. 스위스 국경 가까운 오르낭에서 태어났다. 1844년 살롱에 출품하여 첫입선을 하고, 1849년 〈오르낭의 매장〉에서는 독특한 그의 재능 을 인정받았으나, 1850년의 〈오르낭의 장례식〉은 화단의 찬사와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당시의 고전주의와같은 이상화나 낭만주의적인 공상 표현을 일체 배격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묘사할 것’을 주장한 그의 사상적 입장은, 회화의 주제를 눈에 보이는 것에만 두게 하여일상 생활에 대한 관찰을 자세하게 하도록한 점에서 미술사상 가장 큰 의의를 남 겼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나부와 앵무새〉 〈사슴의 은신처〉 〈광란의 바다〉 등이 있다.

 

쿨 아트(Cool Art)

'차갑다' 또는 '춥다'라는 형용사는 감각이나 감정에 호소하기 보다는 지성에 호소하고 무 관심, 엄격함, 합리성,심원함, 비인격성, 금욕 등과 같은 성질을 보여주는 다양한 형식의 예 술의 특징을 기술하기 위해 최근의 많은 비평가들이 은유적인 의미로 사용하였다. 일반적으 로 쿨 아트는 날카로운 윤곽이나 형식, 그리고 반복적인 구조와 단위로 이루어져 있어, 추상 적이고 기하학적이다. 예를 들면, 추상적인 예술작품을 만들었던 스위스의 화가 거스트너는 <차가운 미술>(1957/63)이라는 표제로 책을 출간했다. 1964년에 필립 라이더는 로버트 어 윈, 프라이스, 구드, 루샤, 벨과 같은 일단의 로스엔젤레스 화가들을 '차가운 유파(The Cool School)' 라고 칭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작품이 불필요한 것에 대한 증오, 간결함에 대한 열 망, 제작의 정확성, 표면의 완벽성을 드러내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차가운 미술의 '차가움'은 하드 엣지, 미니멀 아트, 펀더먼털 회화, 심지어 팝 아트에서도 발견된다.

 

큐레이터(curator)

미술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을 처리하고 수행하는 사람. 보통 학예원이라 한다. 원래 큐 레이터는 '관리자'에서 유래한 말이기 때문에 그것은 자료의 관리자, 다시 말해서 '미술관 자료에 관하여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는 사람'을 지칭한다. 큐레이터는 그 기능에 따라서 연 구를 담당하는 직종, 교육 및 보급을 담당하는 직종, 전시 관계의 업무를 담당하는 직종 등 으로 각각 나뉘어진다. 이처럼 연구, 교육, 실무 이외에도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도 있다. 작품의 수집과 보존 그리고 전시 기술과 더불어 작품의 실물 및 현상에 관련된 도서 나 문헌 등에서부터 녹음, 녹화에 이르는 모든 자료에 관한 조사를 토대로 이를 ① 채집② 구입 ③ 교환 ④ 제작 ⑤ 수여 ⑥ 기탁과 같은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전시, 보존, 복원, 보호하는 일을 담당한다. 1984년에 제정된 우리나라의 박물관법 제 5조 1항은 큐레이터 제 도의 의무적인 법적 적용에 대하여 언급한 부분이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 박물관에는 박 물관 자료의 수집, 보존, 관리, 전시, 조사, 연구 기타 이와 관련되는 전문적인 사항을 담당 하는 직원을 두어야한다." 고 밝히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해리 파커는 "현대 미술 관은 자료의 전문가 이외에도 인간에 대한 새로운 전문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전제, 전 문가를 훈련·양성하는 프로그램으로 미술, 미술관, 사회학 등 관련 항목을 포함한 교육 이 론, 교육 관찰, 미술관 관찰, 시청각 전시 기획, 지각력, 시험과 평가, 지역 사회와 프로젝트 등을 제안한 바 있다. 큐레이터(curator) 미술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을 처리하고 수행하는 사람. 보통 학예원이라 한다. 원래 큐 레이터는 '관리자'에서 유래한 말이기 때문에 그것은 자료의 관리자, 다시 말해서 '미술관 자료에 관하여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는 사람'을 지칭한다. 큐레이터는 그 기능에 따라서 연 구를 담당하는 직종, 교육 및 보급을 담당하는 직종, 전시 관계의 업무를 담당하는 직종 등 으로 각각 나뉘어진다. 이처럼 연구, 교육, 실무 이외에도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도 있다. 작품의 수집과 보존 그리고 전시 기술과 더불어 작품의 실물 및 현상에 관련된 도서 나 문헌 등에서부터 녹음, 녹화에 이르는 모든 자료에 관한 조사를 토대로 이를 ① 채집② 구입 ③ 교환 ④ 제작 ⑤ 수여 ⑥ 기탁과 같은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전시, 보존, 복원, 보호하는 일을 담당한다. 1984년에 제정된 우리나라의 박물관법 제 5조 1항은 큐레이터 제 도의 의무적인 법적 적용에 대하여 언급한 부분이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 박물관에는 박 물관 자료의 수집, 보존, 관리, 전시, 조사, 연구 기타 이와 관련되는 전문적인 사항을 담당 하는 직원을 두어야한다." 고 밝히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해리 파커는 "현대 미술 관은 자료의 전문가 이외에도 인간에 대한 새로운 전문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전제, 전 문가를 훈련·양성하는 프로그램으로 미술, 미술관, 사회학 등 관련 항목을 포함한 교육 이 론, 교육 관찰, 미술관 관찰, 시청각 전시 기획, 지각력, 시험과 평가, 지역 사회와 프로젝트 등을 제안한 바 있다.

 

크뤼거 (Franz Kruger,1797~1857)

독일의 화가. 쾨텐에서 태어났다. 베를린 미술 학교를 졸업하고 동교 교수를 거쳐, 1825년 프로이센의 궁정 화가로 있었으며, 러시아 황제의 보호도 받았다. 비더마이어 시대의 베를린에서 가장 사랑받던 역사화·풍속화가로서, 정확하고 세밀한 현실 파악과 세련된 채색, 고아한 취미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특히 ‘말의 크뤼거’로 불릴 정도로 말을 좋아하여 승마도 등 말을 주제로 한 그림을 즐겨 그렸다. 또한, 행진 광경 등 군중화도 그렸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시 베를린의 저명 인사들의 모 습으로 그려서 인기를얻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오페른 광장의 행진〉이 있다.

 

클라인(Franz Kline)-(1910~1962)

미국의 화가. 일러스트레이션에 매료되었던 클라인은 보스톤의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미술 수업을 받 고 후에는 런던의 허드리 미술학교에서 공부한다. 1943년에는 20년간이나 그려온 구상화를 포기하고 전격적인 추상화로 완전히 전이하는데 그 는 드 쿠닝과 함께 자신의 그림 중에서 한 부분만을 확대해서는 그것을 발달시켜 작품화하 는 작업를 한다. 1950-60년 그의 작품은 모두 대형 화면을 단색으로 채색한 위에다 붓을 힘차게 움직여 검 은 색의 넓은 띠가 교차되어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자리잡고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선구조를 통해 화면을 가득찬 것과 빈것의 조합으로 구성되며 단색으로 처리된 단색 이 이 성격을 더욱 강화시켜주고 있다.

 

클레(Paul Klee)-(1879~1940)

전반기에는 표현주의에 가담하였으나, 후에는 추상과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을 하였다. 독일의 화가이다. 1879년 베른 근처의 뮌헨북세에서 태어나 1940년 무랄토-로카르노에서 사망했다. 음악가 부모 밑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음악과 미술사이에서 어떤 것을 선책할까 고민하기 도 한다. 뮌헨에서 프란츠 폰 그툭의 문하에서 미술공부를 하고 이태리 여행을 한 후 베른 으로 돌아와 최초의 에칭 판화를 제작한다. 1906년 결혼한 후 당시 미술의 중심지였던 뮌헨에 정착한다. 청기사 그룹 화가들과 들로네 를 통해서 색채에 관한 그의 사고를 심화시켜 나가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동안 클레는 혼자 고립된 상태에서 회화기법과 표현의 탐구를 해나가 높은 수준의 추상에 도달한다. 1937년 부터 그의 그림은 상징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쪽으로 기울어진다. 마포, 면, 신문지, 아교 물감등 온갖 재료를 점차 신비한 면모를 띠게 된다. 작품에서 다룬 내용에 있어서나 또는 기법상에 있어서나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 성을 보여준 클레의 작품세계는 1950년대 미국과 유럽의 젊은 세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주제의 기하도형화, 마티에르의 완벽성을 향한 부단한 추구, 색채등이 직관을 수호하려는 그의 원초적 의지를 통해 승화되었다. 클레 (Paul Klee,1879~1940) 스위스의 화가. 베른 근처에서 태어났다. 현대 추상 회화의 시조이다. 어려서부터 회화와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바이올린 솜씨는 전문가 수준이었다. 그의 초기 작품은 어둡고 환상적인 판화가 주류였으나,1914년 튀니스 여행을 계기로 색채에 눈을떠 새로운 창조 세계로 들어갔다. 1921년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 교수, 후에 뒤셀도르프의 미술학 교수가 되어 1933년까지 독 일에머물렀다. 당시 독일에서는 나치스에 의한예술 탄압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로, 102점에이르는 작품을 몰수당하자, “독일은 이르는곳마다 시체 냄새가 난다. ”고 말하고 스위스로 돌아갔다. 주요 작품으로는 〈새의섬〉 〈항구〉 〈정원 속의 인물〉 〈죽음과불〉 등이 있다.

 

클링거 (Max Klinger,1857~1920)

독일의 조각가·판화가.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칼스루에·베를린·파리·로마에서공부하였다. 1878년 베를린의 아카데미에〈장갑〉 연작을 출품하였으나, 그 작품의괴이성으로 인하여 물 의를 일으켰다. 1883년이후에는 파리와 이탈리아를 전전하다가,1893년부터 라이프치히에 머물렀고, 이듬해에 베를린 아카데미의 회원에 선정되었다. 이상주의와 자연주의의 중간적인 화풍으로,인간의 복잡 미묘한 내적 세계를 잘 표현한동판 화 작품들은 질이나 양적인 면에서 모두뛰어났다. 1886년 이후에는 회화와 조각에만전념하였다. 조각에서는 대리석·청동·호박·상아 등을 사용한 대작 〈베토벤의 좌상〉이 유명하고, 회 화에는 〈파리의 심판〉〈피에타〉 〈그리스도 책형〉이 있으며, 저서로 《채화와 소묘》가 있다.

 

키네틱 아트(Kinetic Art)

움직임을 중요시하거나 그것을 주요소로 하는 예술 작품을 말한다. 옵 아트 등의 시각적인 변활쏛 나타내는 거소가는 달리, 작품 그 자체가 움직이거나 또는 움직이는 부분이 조립된 것. 따라서 작품은 거의가 조각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미래주의와 다다이즘 에서 파생된 것으로 최초의 작품 예로는 마르셀 뒤샹이 1913년에 자전거 바퀴를 써서 제작 한<모빌>이라는 조각을 들 수 있다. 1922년에는 나움 가보가 <키네틱 조각>이라는 이름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그 후 모흘리 나기는 이런 일련의 움직이는 작품을 키네틱 아트라고 불 렀다. 이후 현재까지 이런 범주에 드는 작품들이 꾸준히 의식적으로 제작되고 있다. 키네틱 아트는 크게 두 가지 계열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에너지의 근원(주로 바람, 자 력, 그리고 관객 자신)에 따라 분류되는 것으로 미래주의와 구성주의에서 유래한 계보이다. 또 하나는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에서 유래한 것으로 작품 제작에 있어서 정신을 중요시하 는 방향이다. 여기에서 정신이라 함은 동작 중인 순수한 형태를 창조하려는 욕망, 또는 풍자 나 일시적인 기분을 표현하려는 욕망을 뜻하는데, 때로는 넌센스를 의미하는 수도 있다. 전 자는 쟈코모 발라와 포르투나토 데페로 등의 미래주의자들이 그 선구자로서 나움 가보, A. 콜더, 조지 리키,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구성주의적 전통 속에서 키네틱 조각을 제작 한 모홀리 나기와 토머스 윌프레드도 이 계열에 포함된다. 한편 다다·초현실주의적인 키네틱 아트는 1920년대 초에 만 레이와 쿠르트 슈비터스로부터 시작되어 프랑스의 폴 뷔리와 스위스의 팅겔리, 미국의 로버트 브리어로 이어지고 있다. 뷔 리의 섬유판과 목재 원반 그리고 금속 막대기는 숨겨진 모터에 의해 작동하도록 되어 있는 데, 이 기계는 유사 생물학적인 생명의 상태를 지향하고 있는 듯 하다. 팅겔리는 인간의 행 동을 풍자적으로 모방한 여러 가지 기괴한 기계들을 만들어 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뉴욕 찬가(Homage to New York)>이다. 피아노, 자전거, 선풍기, 인쇄기 등을 모아서 만든 이 작 품은 기묘한 동작을 되풀이하면서 불을 뿜고 소음을 내며 스스로 파괴되도록 고안된 것이었 는데, 여기에는 운동보다는 변화가 물체의 본질이라는 팅겔리의 예술관이 반영되고 있다. 1960년대는 키네틱 아트의 황금 시대였다. 스톡홀름의 근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예술에 있어 서 움직이는 것'전이 열린 것도 1961년이었는데, 그것은 키네틱 아트의 '황금의 60년대'를 예고하는 중요한 전시회였다. 키네틱 아트라는 말이 미술계에서 일종의 공용어가 되었던 것 도 이 시기였다. 서독의 오토피네, 하인츠 마크, 귄터 웨커의 '제로 그룹'은 새로운 소재의 이용과 자연과 인공의 빛을 이용한 키네틱 아트의 방향을 강조했다. 또 프랑스에서는 운동 과 빛에 의한 키네틱 아트의 작가들이 '시각예술 탐구 그룹'을 결성하여 이 두 개의 집단에 서 라이트 아트의 계보가 발생한다. 라이트 아트는 미국에서도 미술의 한 분야를 이루었다.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키네틱 아트는 급속히 쇠퇴한다. 1960년대의 빛·움직임·소리로 대 표되던 키네틱 아트의 미학적 요소에 의한 구성 대신에 물, 안개, 연기, 불, 생물적 요소를 포함하는 일종의 생태학적 방법론 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또 한편으로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재발견이라는 점에서 비디오 아트, 레이저 아트, 홀로그래피 등의 첨단적 기술로 접근해 가는 미술가들도 생겨나고 있었다. 이러한 변모에서 특징을 이루고 있던 것은 기계 장치의 운동에 역점을 두었던 키네틱 아트가 1920년에서 1960년까지로 종말을 고하고, 기계 의 운동 자체보다는 그 영향에 의한 여러 가지 효과와 결과에 주안점을 두는 키네틱 아트로 옮겨가는 것이다.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1880~1938)

헤켈, 슈미트-로틀루프와 함게 드레스덴 에서 '다리파'를 창립, 표현주의를 이끌었다. 날카 로운 선과 어두운 색을 사용하여 불안하고 병든 것 같은 인물을 표현했다. 일본판화, 신인상 주의, 칸딘스키를 통해 접한 야수파, 팔라오스섬과 아프리카의 조각등의 미술조류를 접해 나 가며 예술세계를 형성해 나간다. 키르히너의 초기 작품들은 1906년에 그린 [해바라기와 같이 있는 여인의 머리] 에서 볼 수 있듯이, 같은 시기의 프랑스의 마티스가 보였던 야수파 수법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 서 키르히너의 선은 야수파의 것보다 훨씬 투박하게 처리되고 있다. 그후 물감을 두껍게 바르던 기법을 배제하고 좀 더 희석된 물감으로 분홍, 초록,노랑이 주조 를 이루는 작품을 그린다. 그러나 1911년에 베를린으로 활동무대를 옮기고 나서의 시기에 보이는 작품들은 표현주의 화풍을 완성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에는 혹독한 경제 사회적 위기의 전야에 펼쳐지는 한 도시의 모습을 읽게 하는 정 치적 의미를 갖는다. 1913년에 그린 [다섯명의 거리의 여인들] 에서도 엿볼 수있듯이, 톱날같은 예리한 선과 포 물선 같은 곡선이 서로 대조되면서 동시에 결합하므로서 화면 가득히 특이한 긴장감과 움직 임이 살아나고 있다. 거리의 여인들은 그 어떤 방식으로도 보아질 수 있다. 여인들은 뾰족한 자세로 얼러붙어 버린 듯 하다. 모든 동작은 거칠고 메마른 채색작업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들의 구두와 모자 장식같은 말단부들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은 심술궂고 부 도덕해 보이는데 이런 효과는 붉은 색의 입술과 딱딱한 표정의 얼굴에도 나타나 있다. 창백 한 얼굴에 대조되는 것은 옷과 모자는 가냘퍼 보이는 효과를 줄 수 있는데 여기서는 그것 들이 독특함과 혼란함을 강조하고 있다. 배경의 녹색 그림자는 살갗의 색조에 반영되고 있으며 모든 것이 퇴폐적인 분위기를 전해주 고 있다. 주제가 캔버스를 꽉 메우고 있어서 시선이 쉴 곳이 없다. 이러한 효과는 1915년에 그린 [군인으로 분한 자화상] 에서도 느낄 수있다. 뒷편의 나부와 급한 경사로 이루어진 화가의 정면상은 현실적인 색채로 표현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비현 실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날카로운 선과 강렬한 원색이 한데 어울어져 화면은 강한 호소력을 지니게 된다. 이 작품에 서 그의 상태를 엿볼수 있는데 이 그림에서 작가는 오른손이 잘린 모습으로 그려져 그림을 그릴 수없는 자신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13년 같은 해에 그린 [베를린의 거리풍경] 에서는 [다섯명의 거리의 여인들] 에서와 마찬 가지로 도시의 삭막함과 고독한 군상들을 표현하고 있다. 당시 독일 사회는 급격한 산업과 도시발달로 경제적 부를 축척하게 되지만, 빠른 경제성장 에 비례하여 각종 도시문제가 산재해 있었다. 키르히너가 본 도시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혼돈과 무질서속에서 쾌락을 쫓는 인간들의 몰 개성적인 표정 그 자체인 것이다.

 

키리코

'형이상적 회화'로 불리우는 양식을 세웠다. 노년에는 초현실적인 작품을 하지않아 선구자 이자 배신자로 불리웠다.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신비스럽고 기이하게 느껴지도록 그 렸다. 주요 작품 : 거리의 우수와 신비, 시간의 수수께끼, 수학자. 등

 

키치

키치(kitsch)란 일반적으로 영어의 스케치scetch, 혹은 '진흙을 문대며 놀다'는 의미의 독일 어 동사 키췐kitchen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값싸게 만들다'라는 메를렌부르크방언 verkitschen에서 유래했다는 이론, '건방 지고 우쭐대는 것'을 의미하는 러시아어 동사keetcheetsya에서 유래했다는 이론 등이 있다. 이들 어원들에 대한 내용으로 우리는 '키치'라는 용어가 진지함 과는 거리를 갖는 가볍고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사실 부정적 의미를 갖는 그 무엇으로의 키치를 보고자 하는 태도는 최근까지 이어져왔다. 특히 예술의 영역에서 키치는 감상적인 것으로 참된 예술의 물을 흐리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비평가인 클레멘트 글린버그 Clement Greenberg는 "참된 문화의 가치에는 무감각하면서도 특정한 문화만이 제공할 수 있는 오락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생겨난 대용 문화가 곧 키 치" 라는 말로 키치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낸다. 그에게 있어서 키치는 참된 문화의 가치 에 반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가볍고 말초적이다. 실제로 그는 키치에 관해 다음과 같 이 정의하고 있다. 키치...그것은 대중적이고 상업적인예술과 원색화보가 있는 문학지, 잡지의 표지, 삽화, 광고, 호화판 잡지나 선정적인 싸구려 잡지, 만화, 유행가, 탭 댄스, 할리우드의 영화를 말한다. 그 는 키치를 속임수, 술책, 어림짐작 등의 부정적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고, 오늘날의 대중문화 라고 불리워지는 것들을 그 영역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앞서의 참된문화란 순수예술과 같은 고급문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의 주장들을 통해 키치가 천박한 싸구려 산물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는 다음과 같이 키치를 키치로 만드는 기술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키치는 나란히 흘러내리 는 두 줄기 감동의 눈물이 나오게끔 한다. 첫 번째 줄기의 눈물이 말한다. 하지만 잔디밭 위를 달 리는 아이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하고. 두 번째 줄기의 눈물이 말한다. 하지만 온 인류와 함께 모두 다 같이 잔디밭 위를 달리는 아이들을 보고 감동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하고. 두 번째 눈물이 비로소 키치를 만든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이 형제처럼 우애를 갖는다는 것, 그것은 오 직 키치를 통해서만 근거 될 수 있을 것이다. 밀란 쿤데라의 키치에 대한 주장은 다소 애매 하게 들린다. 그럼레도 불구하고 그의 견해는 참된 예술의 물을 흐리는 사이비 예술품이라는 구 체적 산물의 영역을 넘어서 삶의 태도로서 키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다. 여기서 키치를 만드는 두 번째 눈물이란 감동에 대한 감동의 결과이다. 즉, 어떤 대상 자체 가 아닌 그것이 만들어 내는 정서에 대한 관심인 것이다. 이외에도 아브라함 몰르Abraham Moles는 "키치란 일종의 특수한 사회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회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회적 기능이 사물 그차체의 사용기능에 부과된 것 이다" 라고 주장하면서 키치의 사회적 성격을 지적하고 있다. 디자인을 시대정신으로 파악하고 있 는 우나미 아키라Unami Akia의 경우에는 키치가 가지고 있는 사회성 이외에 또하나의 속성을 발견 하고있는데, 그것은 키치가 여러요소의 결합으로 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키치의 산물에서 볼 수 있는 유치함은 이러한 중층적 결과의 결합라고 할 수 있다. 중층성은 키치의 형식상 의 특성일 뿐만 아니라 내용상의 특성이기도 하다. 실재로 앞서 아브라함 몰르가 사물 그 자체의 사용기능에 사회적기능이 부과되어 키치가 존재한다고 본 것은 그 내용에 있어서 중층성을 의미하는 것라고 할 수 있다. 키치가 연출하는 묘한 분위기는 이러한 잡탕찌게같은 중층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위의 논의들로부터 우리는 내용상으로 키치가 통속적인 사회현상으로 진품적가치나 효과를 모방하는 태도와 그러한 산물임을 알 수 있었다. 어떤 가치나 효과를 모방하는 것은 인간의 존재방식의 하나의 유형으로 사회적 기능이 사물, 혹은 소비 과정에 부과된 결과이다. 그러므로 키치는 예술에 국한된 현상 이라기 보다는 모든 인공물과 관계하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키치를 보다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산물로서만 다루거나, 혹은 태도로서만 분 석하는 일방적인 접근은 편협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키치는 인공물과의 관계에서 구체적인 산물로서가 뿐만 아니라 하나의 태도로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산물로 서의 키치의 모습과 태도로서의 키치를 모두 다루어야 한다. (1)태도로서의 키치 "프랑스사람에게 있어서의 키치가 발리섬 주민에게는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아브라함 몰르의 통찰은 키치가 산물 자체의 성격에 의해 규정되기 보다는 판단주체에 자리 하고 있는 의식의 존재방식에 따라 결정될 수 잇음을 시사하고 있다. 즉 동일한 대상이라 하더라도 어더한 상황, 어떠한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키치가 될 수도 있고 그렇 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인간과 사물이 관계하는 다양한 방식이 동시에 섞여있는 상태 로 존재하는 것이 키치의 관계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키치적 관계방식은 사물을 순수한 존재가 아닌중층적인 것으로 만든다. 진품적 가치의 모방, 사회적 가치의 포함 등을 특징으로 하는 키치적 태도는 따라서 하나의 순수한 관계방식을 거부한다. 만일 인간이 어떤 대상과 관계를 맺을 때, 대상의 실제적 존재가치에 덧붙여진 다른 중층적 가치 들을 동시에 소비하고 있다면 이는 키치적 성격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자체가 모순을 포함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욕망하고 변화하는 유기체 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누구든지 상황에 따라 키치적인 속성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 결국 사회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사물과의 관계에서 키치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2)산물로서의 키치 제니 샤프Jenny Sharp가 "키치는 이 나라 대다수의 사람이 가지고 살기 원하는 값싸고, 천 박하고, 감상적이고, 허섭쓰레기 같고, 예쁘고, 귀여운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했 을 때의 키치는 산물을 의미한다. 구체적인 형태에서 키치의 성격이 드러난다는 것은 그 인 공물을 형성하고 있는 구성요소가 키치를 만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산물로서 구체화되는 키치는 나름대로의 형식과 내용에서 키치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산물로서의 키치를 만드는 구성원리를 아브라함 몰르는 다음의 다섯가지로 분류 한 바 있다. 1. 부적합성의 원리:본래의 목적 뿐만 아니라, 동시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 과정에서 형 태, 크기, 형식적 내용 등이 부적절하게 결합되는 것 2. 축적의 원리:형식, 기능, 내용 등의 밀집을 통해 스스로를 눈에 띄게 하는 것 3. 공감각의 원리:다양한 감각 영역을 동시에 자극하는 것 4. 중용의 원리:모든 영역에서 발견되는 이질적인 것들을 혼합하여 집단적 표준화라는 중간 적인 위치로 위치시키는 것 5. 쾌적함의 원리:'편안하게 살자'라는 사고 방식으로 사물의 성격을 놀이에 가깝게 마구잡 이식으로 선택하는 것 그러나 키치적 인공물이 갖는 복합적인 성격이외에도 산물로서의 키치를 보는 다양한 관점 들이 존재하고 그러한 관점에 의해 분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키치의 산물들을 공통된 하나의 분류로 유형화하는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산물로서의 키치는 태도로서의 키 치와 아주 밀접하게 관계한다. 왜냐하면 키치적 태도는 많은 부분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나타나는 것으로, 이는 그 대상의 형식에도 반영되기 때문이다. 키치적 산물은 다수가 소비과정에서 수용자의 특정 정서를 자극하거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산물로서의 키치는 키치적 태도가 대상에 적극적으로 반 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키치의 이해는 대상과 태도를 통해 사회·문 화적인 관계들의 내용 및 상호작용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키치의 연구 는 키치적 태도 그 자체가 아닌, 그것들이 사회· 문화적으로 어떻게 관계하고 있으며, 삶 속에서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해야하는 것이다. 키치의 소비 1.자기정체성 확인 인간의 욕망은 완벽하게 충족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욕망은 속성상 자기 생산을 멈추지 않으며 삶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된다. '욕망하기를 멈추었다'는 것은 주체의 죽음을 의미한다. 실제적인 삶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욕망하고, 또한 '욕함충족의 기호'를 끊 임없이 소비함으로서 자신을 드러낸다.오늘날 이러한 욕망충족의 기호를 소 비하는 모습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찢어진 청바지, 스포츠 카, 이태리가구의 소비, 이 모든 것은 개개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한 노력과 관계한다. 사회 내에서 사물은 실제적 기능 이외에 자신의 정체성 확인이라는 역할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 몰르 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사물을 구입하는 것은 기능적 목적이외의 다른 무엇 이 있어서인가?... 심리분석을 통해 우리는 사물의 소유라는 개념뒤에 소유에 대한 강박관념 terriorial imperative 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세계의 일부 분만이라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적 기능 에 의해서라기보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강박관념이 오늘날 삶에서 소유 를 강요한다고 아브라함 몰르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이 삶 속 에서 사물을 통해 실제화되고, 따라서 삶의 소비는 일정부분 이러한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욕구와 관계를 갖는다. 우리는 여기서 오늘날 폭발적인 소비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사회에서 소비대상인 상품 은 이러한 자기정체성확인의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2. 욕망과 소외의 해소 키치를 통한 소외의 해소는 환경의 장애로 인해 인간의 욕구를 억압시키고 있는 현실로부터 의 심리적 이탈을 의미한다. 소외란 인간의 제욕구를 사회내에서 충족하지 못 함에서 오는 심리적인 불안이다. 키치사물 및 사물의 키치적 소비는 이러한 인간의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켜줌으로서 소외를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3. 구별짓기 키치사물 및 사물의 키치적 소비에서 '과시'의 심리는 구별직기라는 사회기능을 목적으로 하고있다. 사회 내에서 남과는 다른 독특한 부분(副, 젊음, 교육수준, 직업, 지 위 등)은 우월감의 감정과 함께 과시로 나타난다.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계급은 그들의 아비투스에 의해여타의 계급과 구별짓기를 시도하고 이를통해 얻어진 것을 과 시함으로서 차이를 정당화 한다. 나머지 계급은 자신들이 느끼는 결여의 심리를 해소하기 위하여 직접적으로 차이표시기호를 소비하기도 하고, 혹은 차이표시 기호의 이미 지를 소비하기도 한다. 그 결과 차이표시 기호로서의 기능은 상실되고 또 다른 기호가 만들 어 진다. 결국 차이표시를 위한 키치의 생산과 소비는 멈출 수 없는 구조적인 결과가 되는 것이다. 수용의 관점에서 디자인 보기 수용의 과정은 생산 중심심의 디자인 보기가 정하듯이 '디자인 된것과 안 된 것', '디자인의 영역과 아닌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하지는 않는다. 그것들 모두는 삶이라는 공간에 떠다니는 기표signifier일 뿐이다. 수용자는 창조적 주체로서 그들의 상상력을 통해 다양한 의미들을 만들어내고 소통시킨다.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수용의 모습은 생산될 당시에 가정된 사물의 존재가치로 부터 끊임없이 이탈해 가는과정이다. 오늘날 키치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일정부분 키치적으로 말하고, 키 치적으로 입고, 키치적으로 소비하는 키치맨들이다. 이것은 '사물이 단지 본 래적인 목적만으로 순수하게 소비되지않는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오 늘날 사물의 소비는 다양한 사회· 문화적 가치를 실현하고 확인하고자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수용중심적 디자인 보기는 디자인과 실제삶을 보 다 가깝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제 삶에서의 의미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수용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디자인은 삶 속에 다양한 의미들이 창조되고 변화하며 일상의 잡다한 잉야기들을 만들어가는 모습과 직접적으로 관계하고 있다. 여기서 디자이 너의 의도는 무너진다. 수 많은 사물들과 이미지들은 일상의 수용과정 속에서 살아 움직인 다. 수용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디자인은 문화창조의 행위요, 말을 거는 살아있 는 의미체인 것이다. <참고문헌> 오창섭, 디자인과 키치, 1999, 토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