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思考)뭉치     

S# 1. 발명동아리 방

(벽면 제일 위에 태극기가 그려져 있고, 그 밑으로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김진수, 에디슨, 빌 게이츠 등의 초상화와 발명헌장이 어지러이 붙여져 있다.

곳곳에 부서진 TV, 자전거 바퀴, 커다란 솥, 부서진 기타 등의 잡동사니들이 널 부러져 있다.

자그마한 칠판이 있고, 그 옆 중앙의 테이블에서 기훈은 스포이드를 가지고 구정물 비슷한 것이 담겨진 비커에 뭔가를 넣다 뺐다 하고 있고, 경석은 열심히 책을 보며 무언가를 외우듯 중얼거리다, 열심히 쓰다 하고 있다.

윤석은 편안한 자세로 신문을 뒤적이며 혼자 감탄하다, 다시 보다 하고 있다.)

윤석 : 경석아! 기훈이 쟤 뭐하냐?

경석 : 보면 모르냐!

윤석 : 2년째 보지만, 난 기훈이 보면 머리만 아파 오는데!

경석 : 뭔진 모르지만 하여튼 이번에도 뭐 발명한대.

윤석 : 기훈아! 제발 그만 좀 해!

니가 2년동안 발명한다고 부신 것들이

이젠(뒤를 가리키며)동아리 방 다 채울 지경이야!

1

기훈 : (실험을 계속하며)산고 끝에 위대한 발명이 나오는 거야! 이 정도 고통도 감수하지 않고 어떻게 발명가가 되겠다는 거야!

윤석 : 뭐? '산고 끝에 위대한 발명?'

야! (바둑 두는 시늉하며)장고 끝에 악수나 두지 마라!

경석아! 공부 그만하고 점심내기 바둑이나 한 판 두자.

(윤석, 한 쪽 구석에서 바둑판 가져온다.)

경석 :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야!

모든 발명엔 풍부한 기초지식이 있어야 돼!

윤석 : (바둑판 밀어내고 신문 들며)책만 뒤진다고

지식이 쌓이는 게 아냐!

진정한 지식이란 다방면에 걸쳐 골고루

풍부한 상식을 쌓아야 가능한 거라구!

그러고 나면 진리가 보인다 이 말이야!

우리 지도교수님이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러셨어!

경석 :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마! 아는 만큼 보인다구?

(책을 짚으며)보는 만큼 알게 된다!

윤석 : 너야말로 뭘 모르는 구나.

아는 만큼 보이고, 사랑한 만큼 보인다!

뭘 알고 말해야지.

경석 : 갑자기 웬 사랑? 너 미팅하고 싶어 그러지?

2

기훈 : 야! 좀 조용히 해! 집중이 안 되잖아!

윤석 : 아-알았어.

기훈아! 근데 이번엔 뭐 발명하는 거냐?

경석이도 모른다는데 설명 좀 해 주라.

기훈 : 좋아. 설명해 주지.

(칠판으로 다가 서며)잘 들어.

그러니까 (써내려 가며)가속도 a=1/2vt*t이라는 공식을

이용하여 물의 원자 H와 O가 유기화합물로 합성될 때, 단세포 동물의 DNA를 분리 추출하여 허리케인이 부는 맞은 편에 갖다놓고 용암이 흐를 때

지구 반대편 방향으로 축구공을 날려보낸 후의

인체의 변화를 살피는 거야.

윤석 : (경석을 보며)뭐라는 거야?

경석 : (엄숙하게)나는 다만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뿐이다!(헉헉거린다.)

(윤석, 벙찐 표정을 짓 다 다시 신문을 뒤적이고,

기훈은 실험을 계속 하고 있다. 이 때 명수, 진수 들어선다.

명수는 역삼각형의 안경을 쓰고 있고,

진수는 커다란 네모안경을 쓰고 있다.

조금 날리는 복장이다.)

진수 : 헬로우!

3

(아무 반응이 없자 얘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명수와 같이 외친다.)

진수, 명수 : 헬로우!

윤석 : (몹시 귀찮다는 듯 건성으로)어? 세모, 네모 니들 왔냐?

(다시 무표정하게 각자의 일(?)을 한다.)

진수 : 야! 들어와. 괜-찮아 들어와.

(야구복을 입고 글러브를 든 채, 혜련 등장한다.)

혜련 : (머뭇거리며)아무도 없는 방에 우리 단 둘이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걸까?

명수 : 야! 아무도 없긴. 내가 있잖아!

혜련 : (실망하며)으-응. 난 또, 메뚜긴 줄 알았네.

미안해!

(기훈, 경석, 윤석 일제히 쳐다본다.)

혜련 : 어머? 다른 동물들도 있었네.

완전히 동물농장이네!

(모두 경악한 표정이다.)

4

혜련 : 농담이야. 인사할게.

난 진수 친구고 조혜련이라고 해.

(이 때 야구복에 포수글러브와 공을 든 춘화 뛰어들어온다.)

춘화 : 야! 공 줏으러 간 사이에 가 버리면 어떻해.

겨우 찾았잖아!

(다른 애들을 보고는)어머!

전 혜련이 친구고 서춘화라고 해요.

윤석 : 야! (각 자 가리키며)세모(명수), 네모(진수)

니들 또 무슨 일 벌인 거야?

(춘화, 혜련 마주 보며)

춘화 : 세모?

혜련 : 네모?

명수 : 응. 그건 말이야 우리가 세모하고 네모처럼

예쁘고 순수하게 생겼다고 얘들이 붙인 별명이야.

춘화 : (진수 가리키며)네모가 뭐야. 네모가!

이 세상에 (명수 가리키며)세모난 것도 많은데

왜 하필 촌스럽게 네모야?

아-네모는 증말 싫어!

5

혜련 : (명수를 밀치며)뭐? 세모가 뭐야. 세모가!

꼭 메뚜기 밟은 족제비같이 생겨 가지고.

(진수 얼굴을 가리키며)네모가 얼마나 안정적이야!

듬직하고 튼튼하고 애도 쑥 쑥 낳고! (입 가리며)어머?

경석 : 여기가 뭐 우시장인가? 소사러 왔냐?

니들 뭐하는 애들이야?

진수 : 나 대표지성 김진수. 내가 설명하지.

여기 혜련이는 내 친구고, 춘화는 혜련이 친구고,

그러니까 친구의 친구지.

경석 : 그러니까 다 친구들이란 얘기 아냐!

내 말은 야구복입고 자유분방하게 생긴 애들이

우리동아리에 왜 왔냐 이 말이지. 왜! 왜! 왜!

니들이 뭐 야구선수야?

혜련 : (가소롭다는 듯)그렇다고 할 수 있지.

우리실력 한 번 볼래?

(춘화가 반대편으로 가고 혜련 공을 던진다.)

(E) : 퍽. 으악.

혜련 : (손을 내 보이며)앞으로 정확히 3년 6개월 27일

3시간 후 세상은 이 손안에 있게 된다.

(시퍼렇게 멍든 얼굴의 춘화 다가서며)

6

춘화 : 지금도 내 얼굴은 니 손안에 있다!

윤석 : 애들이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왜 여기서 야구를 하는 거야!

진짜 뭐 하러 온 거야?

명수 : 아-그러니까 말이지.

우리가 남북으로 갈라진 상황이지만,

같은 민족으로서 동질성을 갖고

평화통일을 해야하는 거잖아.

윤석 : 통일하고 애들하고 무슨 상관 있어?

진수 : 나 대표지성 김진수. 그러니까 세모 말은 말이지.

('아랫집 윗집' 노래.)

(진수, 노래부르며 고무줄놀이 하는 시늉하고,

이어서 혜련, 명수, 춘화 기차처럼 늘어서서 따라한다.)

아랫집 윗집 사이에 울타리는 있지만,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내일처럼 여기자.

서로 서로 도와가며 한집처럼 지내자.

우리는 한 겨레다 단군의 자손이다.

경석 : 우와! 정말 공부 못하겠네!

야! 난 니들하고 딴 겨레야!

솔직히 말해서 우린 딴 겨레다 이거야!

난 단군의 자손이고, 니들은 원숭이 자손이야!

7

윤석 : 진정해. 그러니까 같이 이 방을 쓰자 이거지?

혜련 : 그-그렇지. 넌 어쩜 그렇게 똑똑하니?

지금은 우리학교에 여학생야구부도 없고 해서

우리들이 먼저 동아리부터 만들어서 활동해보려고 그래.

(뭔가 생각난 듯)아-그러니까 정확히 3년 6개월 27일

3시간 후에 내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

계약금 받은 걸로 아예 니들 전용으로

학생회관 하나 지어 줄께.

(의기양양하게)그 때 쯤이면

(손을 내 보이며)이 손안에 세상이 있게 되는데

이 깟 건물 하나 정도야 뭐.

부담 갖지 말고 받아둬.

진수 : 나 대표지성 김진수.

(마치 사진 찍 듯 혜련과 어깨동무하며)우리의 우정!

세계는 감동하게 될 거야!

(모두 어이없다.)

윤석 : (체념한 듯)하긴 세모, 네모 니들이 앉아있는 걸

본 적이 없으니 같이 써도 되긴 되겠다.

춘화 : (기훈을 가리키며)근데 쟨 아까부터

뭘 저렇게 열심히 연구하는 거지?

윤석 : 경석아! 너 공부 열심히 했으니까 설명할 수 있겠지?

8

경석 : (애써 모른 척하며)더 공부 해봐야 알아.

윤석 : 사실 그러니까 그게... 아뭏튼 그런 게 있어.

혜련 : (칠판 위의 설명을 발견하고는)으-응.

물리적 지식을 활용해 화학적 원소의

생물학적 배양과정을 거쳐

지구의 환경변화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구나 그치?

윤석 : 으-응. 그-그렇지. (안도의 한숨을 쉬며)휴.

혜련 : 그럼 같이 생활하게 됐으니 니들 동아리 소개 좀 해 줘.

진수 : 나 대표지성 김진수. 내가 소개하지.

(벽 쪽으로 다가서며)위 쪽에 있는 태극기는

우리가 직접 그린 거야.

발명한국의 초석을 우리가 다지자는 거지.

그러니까 뭐 과학한국의 주춧돌이 되자는 거지.

춘화 : 하긴 주춧돌은 다 네모났으니까.

진수 : (명수 가리키며)모난 곳엔 세모난 돌도 쓴다.

윤석 : (볼펜으로 신문에다 퍼즐 맞추기하며, 혼잣말로)모. 난. 돌. 이. 정. 맞. 는. 다. 오케이.

9

혜련 : (사진 가리키며)그럼 이 사진들은

위대한 발명을 하신 분들이구나 그치?

춘화 : (진수 사진 보며)어? 이 사람은 누구야?

네모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진수 : 응. 위대한 발명간데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는 않으신 분이지.

(명수, 진수사진을 슬쩍 떼어 내자

경석 : 5000원, 기훈 : 양말 한 짝,

명수 : 3700원, 윤석 : 계란 두 개 라고 씌어 있다.)

명수 : 이게 말이야...

진수 : (명수의 입을 막고 온 몸으로 벽을 가리며)아-그러니까

나 대표지성 김진수가 발명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와 경비에 대한 걸 적어놓은 거란 얘기지.

혜련 : (동의를 구하듯)어머. 어머. 어머. 증말 멋있다!

어쩜 이렇게 겸손하니?

넌 정말 우리학교의

(엄지손가락 내 보이며)대표지성이야!

춘화 : (발명헌장 보며)발명헌장?

명수 : 나 차기지성 박명수. 내가 설명하지.

10

이건 내가 만든 건데 발명의 독립선언서라고 보면 돼.

다들 오른손 들고 따라 해 봐.

(명수 먼저 외치면 애들 한 줄 씩 따라 외친다.)

우리는 발명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안으로는 경비절약과

밖으로는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중간 생략

어쨌든 손에 손잡고 새역사를 창조하자.

(넷 모두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며)

춘화 : 어머. 넘 멋있다.

너 차기지성 박명수!

넌 나의 희망이야!

2등이 더 훌륭한 거야.

끝없이 도전하는 그 정신이 더 훌륭한 거라구.

윤석 : 야! 야! 둘 중에 2등이야.

그러지 말고 다들 여기 앉아 봐.

세모, 네모 니들도 동아리 일 좀 신경 써라.

신입회원 모집해야잖아!

(다들 자리에 앉는다.)

11

춘화 : 그래?

내가 글씨라면 불끄고 떡으로 써도 명필이다.

모집공고는 내가 써 줄께.

혜련 : 그거 좋겠다.

우리가 세 들어 사는 기념으로 해 줄게.

근데 발명동아리 회원모집이라고 쓰면 되니?

경석 : (두 팔을 번쩍 들고)공부 끝.

우리 동아리 이름은 따로 있어. 에디손이라고.

춘화 : 그게 무슨 뜻이야?

윤석 : 에디슨의 손이라는 뜻이지.

에디슨의 모든 발명이 바로 손끝에서

나온 거 아니겠어?

혜련 : 니들 손이 에디슨의 손이라구?

난 저기 있는 솥뚜껑처럼 보이는데?

명수 : 하긴 좀 촌스럽다. 뭐 좋은 아이디어 없을까?

이번 기회에 이름 바꾸자!

(이 때 수위 아저씨 차림의 하룡 등장한다.)

진수 : (폼 무지하게 잡으며)나 대표지성 김진수. 안녕하세요?

12

하룡 : 야! 내가 저 번에 말했지.

대포, 대포 그 놈의 대포소리 좀 하지 말라고.

내가 왕년에 별명이 마포 왕대포야.

어때? 나하고 오늘 저녁에 대포 한 잔 해 볼텨?

명수 : 난 대포보다 맥주가 좋은데.

진수 : 아-아뇨. 근데 웬일이세요?

하룡 : 참! 내가 왜 왔지?

아-그렇지, 그렇지 생각났다.

니들 또 짜장면 먹고 어디 내 팽겨쳤지?

냄새가 온 학생회관에 진동한다 진동해!

혜련 : 하긴 나도 첨부터 뭐 좀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어.

하룡 : 냄새 쪽이라면 여기선 기훈이 짓일 가능성이

제일 높은데...

(기훈을 가리키며)저 녀석 또 뭐 하냐?

윤석 : (칠판 쪽을 가리키며)그러니까 그게 말이죠.

하룡 :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으-음.

공식을 잘 적용했구만.

나도 한 때는 저걸 개발한다고 식구들 발바닥 다 벗겼지.

(모두 놀란다.)

13

애들 : (코를 막으며 일제히)그럼, 무. 좀. 약?

하룡 : (책상 밑을 가리키며)저기봐!

(기훈, 계속 실험에 열중하고 있다.

책상 밑을 보니 열심히 맨 발을 비비고 있다.)

하룡 : (나가며)하여튼 내 수위생활 20년에

저런 사고뭉치들은 첨 본다니까...

윤석 : (뭔가 생각난 듯)그렇지. 바로 그거야.

사고뭉치. (한자씩 또박또박)사. 고. 뭉. 치.

경석 : 사고뭉치라니?

너까지 우리더러 사고뭉치라는 거야?

냄새나니까 빨리 빨리 이름짓고 밥 먹으러 가자.

명수 : 그래.

윤석 : 생각 사에 생각할 고 어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생각덩어리들!

혜련 : 사. 고. 뭉. 치. 이야! 정말 멋있는데?

윤석 : (일어서며 두 팔 벌리고)오! 신이시여!

(두 손으로 턱을 괸 상태에서)이것이 진정

제 머리란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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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수 : (윤석 가리키며)내 머리는 널 잊은지 오랜데...

(이 때 갑자기 하룡 뛰어들어온다.

양손에 반찬 덮을 때 쓰는 고무줄로 패킹된 랩을 들고 있다.)

하룡 : 내가 순순히 물러날 줄 알았지. 그렇켄 못해.

내 사전에 냄새나는 학생회관은 없어.

(애들보고)야! 뭐해! 어서 기훈이녀석 붙들어!

(모두 달려들어 코를 막고 기훈일 붙들어 발을 들어올리면 하룡, 기훈의 발에 랩을 씌운다.)


남 태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