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보다 귀한 우정

: 조선 시대

: 관헌 마당

나오는 사람들 : 임금님, 차돌이, 거북이, 문지기, 시종, 망나니, 백성

 

시종 : (연신 허리를 구부리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임금님께 아뢰옵니다. 융악한 반역죄를 저질러 사형 선고를 받은 죄인 차돌이를 방금 대령했사옵니다.

임금 : (비스듬히 앉아 있던 몸을 바로 세우며) 허험 그래, 저 놈이 바로 과인이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반대를 하고 다녔던 차돌이란 놈이렸다.

시종 : 예이, 저 놈이 바로 그 악독한 차돌이란 놈이옵니다.

임금 : (잠시 동안 차돌이를 노려 본다.) 그래,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는가? 에를 들어 죽을 죄를 지었으니 한 번만 살려 달라든가 뭐 그런거 말이다. 하하하(비웃듯이 웃는다.)

차돌 : 제가 옳다고 믿는 바 대로 행동하였으니 살려달라고 통사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갑자기 말투가 약해지고 부드러워지며) 다만…….

임금 : 다만 어쨌단 말인가?

차돌 : 임금님, 죽기 전에 딱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한 번만 어머님을 뵙고 오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옥문지기 : 쯧쯧, 그래도 자식이랍시고 죽기 전에 어머님 생각을 하는구먼.

백성 : 딱두하지. 그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이 스릴까?

임금 : 왜 이리 어수선한고!

시종 : 임금님께서 심기가 편치 않으시니 조용히 하랍신다.

임금 : (얼굴을 불쾌하게 찡그리며 혼자말처럼) 음, 죽기 전에 어머님을 뵙고 오겠다? (갑자기 화가난 듯 소리를 지른다.) 허튼 수작 하지 마라. 네 놈이 그런 핑계로 도망을 치려고 하지만 안 돼.

차돌 : (더욱 간절한 소리로) 아니옵니다. 도망칠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옵니다. 목슴을 걸고 맹세하건데 꼭 어머님만 뵙고 곧 돌아오겠습니다.

시종 : 마마, 절대로! 절대로 저 간사한 놈의 잔꾀에 속아 넘어 가시면 아니 되옵니다.

임금 : 오냐 알았다.(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으로 수염을 쓰다듬는다. 잠시 생각한 다음) 네 이놈 --. 뭐, 목숨을 걸고 맹세한다고? 하하하! 이놈아, 네 목숨은 이미 사형대에 걸려 있단 사실을 알고 하는 말이냐?

차돌 : 임금님, 마지막, 마지막 소원이옵……. (말을 맺지 못하고 엎드려 흐느낀다.)

이때 구경하던 백성들 사이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한 젊은이가 비장한 결심을 한 듯 입술을 깨물더니 뛰어 나와 임금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임금 : 무슨 일인고? (약간 놀란 듯)

거북 : 임금님, 제가 차돌이 대신에 옥에 들어가 있을 테니 차돌이를 집에 다녀오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백성 : 아니 저 사람은 차돌이의 친구 거북이가 아닌가?

옥문지기 : 맞아. (손뼉을 치며) 어려서부터 온 동네가 부러워할 만큼 단짝이었지.

시종 : 임금님,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이옵니다. 차돌이는 사형수이옵니다. 내보내면 틀림없이 도망치고 말 것입니다.

거북 : (시종의 말을 가로막으며 확신 있게) 아니옵니다. 차돌이는 저의 하나밖에 없는 친굽니다. 차돌이는 반드시 약속을 지킬 것입니다. 저는 저의 친구 차돌이를 믿습니다.

임금 : (우습다는 듯) 뭐? 친구를 믿어? 만약 차돌이가 돌아오지 않으면 그땐 어쩔테냐?

거북 : 차돌이가 만일 사형날까지 오지 않는다면 그 때는 (잠시 생각하는 듯 망설이다가) 제가 대신 사형장으로 가겠습니다.

임금 : 음, 그래. 그건 정말 재미있는 일이구나. 친구대신 죽겠단 말이지?

거북 : 예, 그러하옵니다. 하오니, 제 청을 꼭 들어주셔야 합니다. 상감 마마.

임금 : 좋아, 그렇다면 네 부탁을 들어 주지. 그러나 후회하지는 말아라.

시종 : 임금님, 저런 놈들의 잔꾀에 속아 넘어가시면 아니 되옵니다요.

임금 : (일어서서) 시끄럽다. (잠시 거북과 차돌이를 바라보다가 퇴장한다.)

차돌 : 고맙네, 거북이. 내 자네의 우정을 잊지 않겠네. (울먹인다.)

거북 : 여기 걱정은 말고 어서 어머님께 가 보게나.

 

차돌이는 황급히 어머님을 뵈러 나가고 거북이는 시종에게 끌려 차돌이 대신 옥에 갇힌다.

백성 : 참 별난 바보도 다 있지. 친구를 위하는 것도 좋지만 친구의 죽음을 대신 맡다니…….

문지기 : 그나저나 약속을 지켜야 할 텐데.

백성 : 차돌이는 반드시 돌아올 걸세.

문지기 : 제발 그렇게 되어야 할 텐데. 아 그래야 우리도 믿고 살아야 할 무엇인가를 간직하게 될 게 아닌가?

어느덧 무대에는 시종과 거북이만 남아 있다.

시종 : 야, 이 바보 녀석아! 아무리 친구라지만 간신히 감옥을 나간 놈이 끽 (손으로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하며) 제 목을 내놓으러 다시 올상싶으냐?

거북 : 시끄럽소. 차돌이는 꼭 돌아올거요.

시종 : 그건 두고 보면 알 일이지만 그가 오지 않으면 네 놈이 죽는다는 걸 잊지 말아라. 이 말씀이야.

어느새 차돌이가 돌아올 날짜가 되엇으나 그는 아직 오지 않고 있다.

시종 : (종종 걸음으로 앞서 나오며) 임금님 납시오.

백성 : 오늘이 사형 집행일이지?

문지기 : 아,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것 아닌가?

시종 : 그것 봐라. (안됐다는 눈초리로) 어느 놈이 죽을 곳을 제 발로 찾아온단 말이냐? 이젠 어쩔 수 없지. 약속대로 너를 죽일 수밖에…….

이때 서슬이 시퍼런 칼을 든 망나니가 뛰어나와 한바탕 춤을 춘다.

망나니 : (칼로 자르는 시늉을 하며) 누구든지 이 반질거리는 칼로 그냥 쓰윽…. 으하하하, 깨끗하게 한 많은 세상을 하직하게 해 주지. (계속 위협적으로 주변을 누빈다.)

임금 :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는가?

거북 : 없습니다.

임금 : 제가 살기 위해 너를 대신 죽게 하고 도망간 차돌이에 대해서도 말이냐?

거북 : (단호하게) 그는 도망가지 않습니다. 아마 무슨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드디어 사형 집행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린다.

망나니 : 으하하하하, 드디어 나의 솜씨를 보여 줄 때가 왔구나. (손으로 한 번 쓱 칼을 문지른다.)

멀리 사람이 뛰는 듯한 황급한 소리. 바람 소리가 들린다.

백성 : 기다려 보세요.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모두 문 쪽으로 귀를 기울인다.)

문지기 : 그래. 무슨 소리가 들리고 있어.

거북 : 차돌이…… (낮게 불러본다.)

차돌이 숨이 턱에가지 닿아서 달려오고 있다. 그의 온 몸은 땀과 흙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다.

차돌 : (헐떡이며 급박한 소리로) 거북아! 미안해.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구나. 조금만 늦었더라도……. (거북을 끌어 안으며 그 자리에 쓰러진다.)

망나니 : 오래간만에 신바람나게 한바탕 솜씨 자랑을 하려고 했는데, 에이.

시종 : (정신을 못 차리는 차돌을 향해) 도대체 왜 이리 늦었는지 까닭을 아뢰어라.

임금 : 그래, 그 까닭이나 들어 보자.

차돌 : (낮은 목소리로) 예, 오는 도중 배가 파손돼 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허나 소신은 거북이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이렇게 간신히 살아 돌아왔습니다.

백성 : 과연 차돌이와 거북이야.

차돌 : 임금님, 어머니를 뵈옵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제 친구 거북을 풀어 주시고 저를 죽이십시오. (무릎을 꿇는다.)

임금 : (한참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린다.) 아! 우정이란 죽음보다 강하구나, 나도 저러한 친구가 있었어면…….

시종 : 마마, 빨리 차돌이의 사형을 거행시켜얍지요.

임금 : 듣기 싫다. (차돌과 거북을 인자하고 부드러운 눈으로 보며) 너희들의 그 우정이 부럽구나. 자,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 두 사람은 그 우정과 믿음을 영원히 간직하여 주길 바란다. 어서 모두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여라.

거북과 차돌은 부둥켜 안고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나머지 인물들은

원을 만들어 춤을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