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둑 과   사 또

<때> 옛날

<곳> 동헌,정자

<나오는 이들>

사또, 이방, 형방, 포졸, 중, 하인, 도둑

1장

동헌 마루 가운데 큰 의자에 사또가 앉아 있고 오른쪽에 이방과 형방이 서 있다. 막이 열리면 삼문 밖(무대밖)이 시끄럽고 사또가 이방에게 묻는다.

사또 : 여봐라, 이방.

이방 : (허리를 굽히며) 에이. 이방 대령이오.

사또 : 밖이 왜 이리 시끄러운고, 어서 알아보아라.

이방 : 예이. 밖에 들어오너라.

포졸은 중과 함께 들어온다. 중은 사또 앞에 무릎 꿇고 포졸은 왼쪽에 서 있는다.

: 사또님께 아뢰오.

사또 : 그래, 무슨 까닭으로 찾아왔는고.

: 예. 오늘 마을에 장이 서서 종이 한 짝을 지고 나와 팔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잠깐 한눈을 팔고 있는 사이 그만 잃어 버렸지 뭡니까?

형방 : 사또 나리. 이 자의 말로 보아 거짓이 아닌 듯하옵니다.

사또 : (짐짓 화를 내어 큰 소리로) 그대의 물건을 그대가 지키지 못하고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잃어 버렸으니 어디서 찾는단 말이냐?

: 황공하옵니다. 사또!

사또 : 그대의 잘못으로 저지른 사소한 일로 관가에 오다니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렷다.

: 예, 사또님. 미련한 소견에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포졸 : 자, 어서 나갑시다.

: (일어서며 혼자말로) 체, 명판관이라더니 헛소문이구먼.

포졸과 중이 무대 밖으로 나간다.

2장

흥겨운 장단과 함께 사또와 이방·형방 등이 술좌석을 벌이고 연회를 열고 있다. 그 한쪽에는 포졸이 서 있다.

사또 : 하하하. 오늘 놀이가 정말 흥이 나는구나. 그렇지 않느냐?

형방 : 예예. 그러믄요.

사또 : 자, 해도 기울었으니 그만 돌아가도록 하자.

이방 : 예이, 얘들아 그만 돌아가자.

* 사또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이방 관속들은 채비를 하여 길을 떠난다. 이때, 무대 귀퉁이의 장승을 보고는

사또 : (역정을 내며) 아니 저것이 어인 놈이기에 사또 행차 길에 똑바로 서 있단 말이냐, 능지 처참을 할 놈 같으니.

하인 : 아뢰옵기 송구스럽사오니, 저것은 사람이 아니 오라 장승인줄로 아뢰오.

사또 : (노기 띤 목소리로) 그것이 비록 장승일지라도 태도가 매우 건방지구나. 어서 잡아다 옥에 가두어라.

포졸·하인 : 옥에 가두라굽쇼?

사또 : 그래. 도망치지 못하도록 잘 지켜라, 알았느냐?

* 사또와 하인은 먼저 나가고 포졸은 장승을 뽑아 무대 밖으로 나간다.

형방 : 사또 어른이 술에 취해서 그러니 신경 쓰지 말게.

이방 : 암. 장승을 사람 취급한 걸 보면 모르나.

형방 : 지킬 것도 없네. 도망가긴 어딜 도망가, 장승이 걸어다닐 리도 없고……. 자. 가세.

* 이방·형방 무대 밖으로 나간다. 잠시 후 사또가 등장하여

사또 : 여봐라, 먹쇠야.

하인 : 예, 부르셨습니까?

사또 : 가까이 오너라.

하인 : 예.

사또 : 지금부터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아까 잡아 온 장승 있지 않느냐.

하인 : 옥에 가둔 것이요?

사또 : 그래. 그 장승을 옥에서 몰래 꺼내 광 속에 숨겨 두어라.

3장

동헌에 이방·형방 등이 서 있고 사또가 들어와 의자에 앉는다.

사또 : 여봐라. 어제 잡아들인 장승을 당장 대령시켜라.

이방 : (놀라며) 예, 장승을 요?

사또 : 당장 대령시키렷다.

이방 : 예.

(무대 옆을 향하여)밖에 포졸은 장승을 대령시키랍신다.

포졸 : (당황한 듯 헐떡이며) 이방 나리, 장승이 없어졌습니다.

이방 : 뭐라고, 장승이 없어졌다고?

형방 : 아니 그러면, 장승이 걸어서 달아났단 말이냐?

사또 : 뭐하고 있느냐. 당장 대령시키지 못하고!

이방 : 사또, 장승이 없어 졌다 하옵니다.

사또 : 뭐라고? 이런 칠칠치 못한 것들 같으니, 내가 어제 단단히 지키라 하지 않았더냐.

형방 : 하지만 사또, 장승이 자기 혼자 걸어갔을 리도 없고…….

사또 : (벌떡 일어서며) 닥쳐라. 너희즐은 내 명을 어겼으니 그 벌로 종이 한 장씩을 바치되 만일 바치지 않는 자가 있거든 곤장으로 다스릴 것이다.

* 셋 모두 무대 밖으로 나가고 곧이어 무대 들랑날랑하며 무대 가운데 종이를 싸 놓는다. 곧이어 사또가 느린 걸음으로 나온다.

사또 : 모두 가져 왔느냐?

모두 : 예.

사또 : 얘, 먹쇠야.

하인 : (들어오며) 부르셨사옵니까, 사또 어른.

사또 : 너는 지금 곧 봉은사로 가서 종이를 잃어버린 중을 데리고 오너라.

이방 : 사또, 중은 뭐하려고 부르십니까?

사또 : 도둑을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

형방 : 도둑이라뇨, 무슨 도둑을 이르시는 겁니까?

사또 : 곧 알게 될 것이다.

* 하인이 중과 함께 들어온다.

하인 : 사또 어른, 봉은사 스님을 데려왔습니다.

사또 : 어서 오시오. 스님, 여기에 있는 종이가 스님 것인지 살펴보시오.

* 많은 종이를 하나씩 들고 살펴본다.

: (종이를 들고) 사또 맞사옵니다. 소승이 잃은 것이 틀림없사옵니다.

사또 : 여봐라! 지금 당장 그 종이 판 자를 잡아오너라.

형방 : 예, 다녀오겠습니다.

* 곧이어 형방이 도둑을 데리고 들어온다.

도둑 : (무릎을 꿇고) 사또, 소인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십니까?

사또 : 이놈, 네 죄를 네가 모르면 누가 알겠느냐? 이실직고하지 못할까!

도둑 : 소인은 정말 억울하옵니다. 사또님.

사또 : 여봐라, 바른 소리 할 때까지 주리를 틀어라.

도둑 : 사또, 바른대로 말하겠습니다. 그날 소인은 스님이 딴전을 피는 동안 종이를 몰래 훔쳐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살 사람을 물색 중에 갑자기 종이 살 사람이 많아서 '옳다구나, 기회는 이때다.'하고 형방 나리께 판 것이옵니다. 사또 어른,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도둑 : 당장 죄인을 하옥시키렷다.

이방 : 그러면 그렇지, 우리 사또님은 명판관이라니까.

형방 ; 암, 장승을 옥에 가둘 때부터 이상하다 했지.

사또 : 여봐라, 잃어버린 스님의 종이는 돌려주고, 너희들은 종이를 돌려주고 돈을 받도록 하여라.

모두 : 감사하옵니다, 사또 어른.

우리 사또 만세, 명판관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