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1913-1974)
|
김환기의 호는 수화, 1913년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태어났다. 1933년에 일본대학 예술학원 미술학부에 입학하여 1936년에 졸업했다. 1936년에 길진섭 등과 함께 백만회를 조직하여 활동했으며 1937년에 귀국하였다. 해방 뒤 서울대학교 교수로 취임했으나 곧 사직했으며 1948년에 유영국, 이규상과 함께 신사실파를 조직하고 꾸준히 활동을 펼치는 한편 1949년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추천작가 등으로 활동하였다. 1952년 피난지 부산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홍익대학교 교수로 취임, 재직하였다. 1954년에 대한민국예술회원으로 피선되었으며, 1956년에 프랑스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1960년대 초에는 대한미술협회 회장,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1963년에 상파울로 비엔날레 회화부문 영예상을 수상환 뒤 1965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창작에 혼신의 힘을 쏟던 중 1974년에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김환기는 일본 아방가르드 경향에 참가하여 1935년에 이과전, 자유미술협회 공모전에 응모했고, 또한 1937년 일본에서 첫 개인전을, 1940년에 서울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친 모더니스트였다. 김환기는 해방 뒤 민족전통소재를 추상화 시킨 <꽃>, <구름과 달>과 같은 작품을 발표했으며 미국 체류 중이던 말년에는 독창적인 추상 양식인 점묘시리즈에 몰두한 한국 추상미술의 개척자이자 독자적 세계를 구축한 거장이었다. 전위미술인 이상회화는 어디까지나 아름다워야 하고 그 아름다운 법이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워야 한다. 현대미술의 한계에서만 전위회화가 존재한 게 아니라 일직이 그 시대에 있어 이미 전위적 회화가 있었고, 그러지 때문에 전위미술은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고 또 내일로 전진한다. 인간의 진정한 창조란 그 시대의 전위가 될 것이고 진보란 전위적인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미술사는 항상 새로운 백지 위에 새로운 기록을 작성해 간다. 여기 와서 느낀 것은 시 정신이오. 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 할 것 같소. 거장들의 작품에는 모두가 감격한 노래가 있구려. 지금까지 내가 부르던 노래가 무엇이었다는 것을 나는 여기 와서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소. 밝은 태양을 파리에 와서는 알아진 셈. 창조의 일은 언제나 새로운 발견이다. 새로운 것이라 생각하고 해놓고 보면, 누군가가 이미 한 일일 때 무의미하게 되고 만다. 아무도 하지 않은 일, 지금까지 없었던 일을 찾아내고자 하는 데서 오늘의 예술의 다양성이 이루어지고, 또 따라서 이해부득의 불가사의한 일들이 속출하는 오늘의 창조계의 현상인 듯 싶다. 불가사의한 일들이 진실로 좋은 일, 다시 말하면 그 일에 예술성이 더해졌을 때 비로소 인정을 받을 수 있되 불가사의하고 기괴한 일로서 끝나버릴 때는 하나의 조류에 불과하게 된다. - 1960. 작가의 노트 중에서 위의 글은 그의 예술세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끔 한다. 그는 자신만의 새로운 예술성을 끊임없이 새로이 창조했던 것이다. 작품 간간히 덧붙여 있는 그에 관한 글들은 그가 마치 화가이기 보다는 하나의 시인이요, 민족가임을 짐작케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