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신 (金得臣/1754~1822)

밀회투전 파적도

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 개성. 자 현보(賢輔). 호 긍재(兢齋). 처음의 호는 홍월헌(弘月軒). 화원 응리의 아들, 석신의 형. 벼슬은 화원으로 초도 첨절제사를 지냈다. 그는 김홍도·신윤복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로 널리 알려졌으나, 풍속화 이외에 도석인물을 비롯하여 산수·영모 등도 잘 그렸다. 김홍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특히 풍속화는 그 경향이 두드러진다. 대표작에 《파적도(破寂圖)》 《귀우도(歸牛圖)》 《귀시도(歸市圖)》 《오동폐월도(梧桐吠月圖)》 《신선도》 등이 있다.


                        파적도에 대한 작품 감상문

고등학교 시절 미술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있는 그림이다.

종이가 산화되어서 약간 누렇게 보이긴 하지만 보존 상태도 우수하고 특히 내용 자체가 상당히 재미있는 그림이기 때문에 쉽게 기억해낼 수 있었다. 마치 사진의 한 컷 처럼 재미있는 순간을 기발하게 포착하고 있으나 가만히 살펴보면 그 이상의 것이 느껴진다. 단순히 재미있는 한 순간의 포착이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편 들은 기분이다. 동양회화 특유의 실시간의 느낌이 살아있는 것이다.

병아리가 몇 마리 있고 뒤뜰에 있는 나무에 새싹이 오른 것으로 보아 봄날 오후쯤 되는 모양이다. 한가로이 마루에서 담소를 나누며 작업을 하고 있었음직한 부부가 암탉의 울음소리와 병아리의 외마디 비명을 듣고 놀라 쳐다보자 이미 도둑고양이 입에는 병아리 한 마리가 물려있다. 당황한 남편은 신발도 안 신은채 몸을 날려 손에 쥐고있던 담뱃대를 휘둘러 보지만 날쌘 고양이는 이미 사정 거리 밖이다. 새끼를 잃은 암탉도 목숨을 걸고 달려 들어보지만 고양이는 뒤를 돌아보는 여유와 성취감을 맛보며 날쌔게 사라진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린다. 고양이의 표정이라든지, 부부의 표정과 동세가 너무 재미가 있어서 쳐다보고만 있어도 가만히 웃음이 배어난다.

작가인 김득신을 단순히 이 작품만으로 평가해 본다면, 그는 상황의 효과적인 연출에 기막힌 능력을 보이다. 마당엔 틀이 쓰러져 있고 탕감은 아직도 공중에서 머물러 있다. 거의 수평에 가깝게 누워 불안해 보이는 남편의 동세까지.

화면 곳곳을 채운 요소들이 적당히 긴장감을 유지해주며 황당한 상황의 느낌을 보는 이에게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감각으로 보건데, 현대의 영화나 연극의 연출을 담당하더라도 매우 뛰어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전혀 두께감이 보이지 않는 벽이 있고 창문과 마루는 엉터리 투시도를 보이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다. 그가 작품을 그리면서 전하고자 했던 건 그렇게 분석적이거나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익살적이면서도 품위 있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서민의 풍속적인 면을 해학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결코 천해보이지 않는, 작품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는 그의 연출력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작가가 이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 대하여 한번 상상해 보았다. 김득신은 틀림 없이 남편의 머리부터 먼저 그렸을 것이다. 밑그림 따위는 처음부터 있음직해 보이지 않으며, 그냥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상황과, 구도에 의해서 작화를 시작했을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이쯤이다 싶은 위치에 머리를 그려넣고 각각의 사물들을 배치해 나갔을 것이다. 그러다가 그는 부인을 그리면서 맨발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정확한 의미는 알 수는 없지만 남편이 버선을 신은 것에 비해 아내는 맨발이며,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던지 남편의 엉덩이 뒤쪽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위쪽으로 맨발을 그려넣었다.

그래서 마치 부인이 남편의 엉덩이를 밝고 있는 것처럼 그려지고 말았다.

조형적으로 뛰어난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어쩐지 즉흥적이고 계획보다는 감각에 의해서만 그려진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 쓴 이를 기억할 수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