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로 작품감상

문자추상
고암 이응로 <군>의 감상문

<군>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들을 간략한 형태로 변형시켜 큰 화면속에 빽빽히 채운 그림이다. 좀처럼 선택하기 힘든 파격적이고 놀라운 시도라는 생각이 든다. 그 그림에서 그가 가진 조형적 감각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를 실감할 수 있다. 조그맣고 비슷한 형태의 소재들을 배치하는데 약간의 변형만을 쓰고도 이렇게 아름다운 율동감과 조형미를 얻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보통의 경우 작고 단순한 형태만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건 잘 맞추어진 구도라 하더라도 시각의 분산을 막아내기 힘들고, 산만한 느낌을 하나로 묶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아는 내게 그 작품은 깊은 인상으로 남는다. 적당히 배치된 여백과 한번에 그렸음직한 조그마한 인물에서 보이는 시원한 운동감이 군상이되면서 아름다운 율동감으로 재탄생되는 것 같다. 많은 인물을 그려 넣었지만 모두가 취한 포즈가 약간씩 다를 뿐 아니라, 서로의 움직임을 엮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어서 군상전체가 주는 율동감은 전체 인물들이 춤을 추고 있다는 상상을 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또한 화면속 인물 사이에서 흐르는 은유한 율동감은 마치 군중의 물결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는 세부적인 설명과 묘사를 통해 상황이나 현상을 객관적으로 관중에게 인지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전하려고 하는 목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직접적인 표현으로 나타내지 않고 은유적이고 암시적인 표현으로 그 해석의 권리를 관중에게 넘긴것이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보는 사람에 따라 춤을 추는 군중일 수도, 새까맣게 몰려든 민중의 움직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도중 도중 적혀있는 그의 소개에 관한 글에서 그가 독일에서 살았지만 진정한 한국인으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방금 본 그의 작품 <군>이 바로 5.18광주 민주화 운동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이 사실을 알고 다시 고개를 들어 그 작품을 보았을 때 형용하기 힘든 전율이 이는 것이다.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지도 않은 그 그림은 아주 잠깐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몇시간 짜리의 다큐멘터리 필름을 본것처럼 뭉클한 감동이 이는 것이다. 종이의 표면에 맺힌 먹물과 붓자국, 그 조형요소가 주는 미적 체험에서 벗어나 그의 정신세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겨우 종이 위에 엊혀진 자욱들 만으로 그를 평가하려 했던 나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다.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나의 무지가 오히려 미안해질 정도이다. 그는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이유로 한국 입국이 거부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국내에서 보다 국외에서 더 잘 알려져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민주화 정신이라던지 분단상황의 이데올로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몇 작품이 당시에는 충분히 한국정부에게 거부감을 주었을 거란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그래도 비교적 다행이라 생각되는 건 마치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처럼 생각되던 그가 비록 사망 후 지만 그의 가치에 대하여 재평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자추상>의 감상문

이 작품은 추상회화로서 동양의 상형문자가 보여주는 신비감을 잘 살린 문자 추상이다. 물론 무슨 글자인지 알아볼 수는 없지만 화면전체가 보여주는 미감은 훌륭한 것이다. 서양의 예술에서 찾아볼 수 없는 서예라는 장르를 서양식 회화의 방법과 절묘한 접목을 한 것처럼 보인다. 동양의 예술인 서예는 단순히 그것이 담고있는 문학적인 내용 뿐 아니라, 아름다운 미술적인 감각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그림에서부터 출발한 상형문자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양사상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서예의 정신을 동양인으로서 잘 알고 있었던 그 였기 때문에 이렇게 훌륭하게 회화로 재구성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을 살펴 보면 그가 한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진정한 이유를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이 지닌 진정한 가치는 단지 종이 위에 올려진 조형요소들이 아니라, 그 요소들 속에 깃들어 있는 그의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