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화

 


추상회화의 흐름

1910 년에서부터 제 1 차 세계대전 동안에 걸쳐 유럽 각지에서 뜻하지 않게 거의 때를 같이하여 이러한 추상회화의 움직임은 크게 나누어 세 가지 흐름으로 분류된다. 그 첫째 흐름은 바실리 칸딘스키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추상 표현주의 또는 뜨거운 추상이며, 두번째 것은 피에트 몬드리안, 카시미르 말레비치에 의해 주도된 기하학적 추상 또는 차가운 추상,그리고 세번째의 것은 로베르 들로네, 프랑시스 피카비아 등에 의해 대표되는 색채 콤포지션에 의한 추상 경향 , 즉 [오르피즘]의 흐름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움직임은 각기 첫번째는 독일, 두번째는 네덜란드와 소련, 세번째는 프랑스라고 하는 제나름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추상 회화의 세 흐름을 두고 볼 때 매우 흥미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이들 중 추상 표현주의를 빼놓고 나머지 두 경향이 다같이 입체주의를 그들의 추상의 시발점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통파 입체주의에서 직접 추상으로 뛰어든 몬드리안의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들로네 역시 입체주의의 조형적 축구를 흡수 동화시키면서 색채의 리드미컬한 대비에 의한 화려한 추상 콤포지션을 이루고 있다.

입체주의적 체험의 그와 같은 자유로운 추상 전개에 비해 피에트 몬드리안의 추상으로의 전환은 입체주의의 엄격한 조형적 논리의 귀결이다. 신조형주의라는 이름 아래 입체주의가 지향했던 조형의 자율성의 문제를 가장 순수한 상태로 환원시켜 갔으며 끝내는 오직 수직, 수평, 장방형만으로 이루어진 금욕적인 기하학적 추상에 도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추상과 함께 회화를 가장 순수하고 기본적인 조형 요소로 환원시켰다.

몬드리안과 마찬가지로 단순화된 기본적인 형태, 즉 기하학적 형태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카시미르 말레비치의 추상은 다른 양상을 띤다. 그는 자신의 추상적 탐구를 쉬프레마티슴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기도 하거니와 그에게 있어 절대가 의미하는 것은 회화에 있어서의 감성의 절대적 우위성이다. 그에 의하면 예술에 있어 절대적인 것은 순수한 감성이며 눈에 보이는 외계의 현상은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그리고 그 감성을 가장 덜 물질적인 형태, 예컨데 네모꼴, 원 등의 형태를 통해 표현하려고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흰 바탕 위에 흰 네모꼴]이라는 거의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작품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려진 형태는 밖과 속이 다 같이 텅 빈, 거의 무의 상태의 것이기는 하나, 그것이 바로 말레비치에게 있어서는 순수한 감수성의 표현을 의미하는 것이다.

1910 년경에 불어닥친 추상회화의 세찬 물결은 그 창시자 자신들에 의해 꾸준히 전개되어 제 2 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까지는 그들의 추상회화의 양식적 전개는 모두가 완성 단계에 이른다. 그리고 그 창시자들 거의가 전쟁 전 아니면 전쟁 중에 세상을 떠난다. 그리하여 제 2 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부터 제 2 의 새로운 추상의 물결이 추상 회화의 창시자들의 교훈을 물려받으면서 다시 거세게 몰아닥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