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산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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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전도 | 인왕제색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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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는 회화사상 새로운 경향의 업적을
남겼는데 이는 진경산수화, 남종화,풍속화의 유행이다.
이러한 화풍들은 가장 한국적이고 민족적이라 할 수 있다.
조선후기에는 크게 4가지로 그 시대의 경향을 살펴보면 첫째, 조선중기에 유행했던 절파화풍이 쇠퇴하고 문인화, 남종화가 유행하였다. 둘째, 남종화법에 기반을 두어우리나라에 실재 존재하는 산천을 소재로 하는 진경산수화가 유행하였다. 세째, 실학의 대두와 서민의식 발달로
풍속화가 유행하였다. 네째 서양화법의 전래되어
부분적으로 수용되었다. 조선후기에는 양대 전란을 겪은
후로 영,정조시대에는 정치, 경제의
안정을 이룩하였는데 이 당시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종래의
관념성에서 탈피하여 현실에 충실하고자 하는 현실적
문제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실학의
대두와 그 맥을 같이하여 일반과 보다 가가워졌고
생활주변속에서 소재를 찾는
서민문학의 발달을 가져왔다. 이 당시 조선후기의 회화에
있어서 위대한 업적은 사실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조선풍의 독창성을 이끌어내었다는데 있다.
즉 한국적 화풍을 이룩하였다. 이와같은 시대적 배경속에서 자라난
자아의식을 바탕으로 종래의 중국의 화보만을 모방하여
그리던 초기 화풍에서 벗어나 우리 산천으로 즉 관념적인
산수화에서 우리 산천을 직접 사생하여
그리는 실경산수화를 그림으로써 독창적인 화풍을 창출해
내었다. 우리나라의 산수화는 관념적인 중국
산수화법을 이해하고 모방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였는데
중국화법에 익숙해지는 동시에 새로 도입한 주자 성리학은
중국화법에 대한 철저한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양란으로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으로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우리것에
대한 애착, 민족적 자각에서
실학사상으로 이어져 한국적 현실성에 눈을 떴다. 또한 주자
성리학은 퇴계 이황대에 완벽하게
이해하고 율곡 이이는 이를 발전시켜 조선의 성리학으로
토착화시켰다. 따라서 주자 성리학은
외래사상이 아닌 독자적인 조선특유의 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속에서 자연히 우리의 산천, 우리의 것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진경산수화란 어느 특정한 지역을
대상으로 하여 객관적 사실표현으로 그렸다고 하기보다는
민족적 자각과 함께 우리의 산천의 모습을 실경 사생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산수화를 그린 정선은 전경도
형태로부터 자연의 특징적인 부분을 압축한 단일화재까지
매우 다양하다.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은 당시 화단에
유행하기 시작한 피마준이나 미점등
남종화법을 바탕으로 하였고 조선중기에 유행했던
절파화풍의 잔영도 엿보인다. 정선이 언제부터 실경을 그렸는지는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아마도 실경화의 시작이나
심취계기는 당시의 명사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가졌던
사회나 계회의 기념화 제작등 사회적
요구에서 출발하엿을 것으로 본다. 정선의 실경산수는
단순한 사경이라기 보다는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화법으로 그가 직접 여행하면서 우리의 산천을
그린, 자기만의 독특한 화풍을 이룩하여 이것이 한국적인
화풍을 형성했다는데 큰 의의를 갖는다.
또한 그는 화가의 눈을 중국의 교과서가 아닌 자기주변의
생활환경에 눈을 돌리게 한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중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가
있는데 여기서 정선이 남종화법에
기반을 두고 겸제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이룬 것을 볼수
있다. 그리고 정선을 따르는 화가들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일명 정선에게 영향받은 사람들을 정선파라
불렀다. 이 정선파 화가 중에는 강희언의 [인왕산도]
김윤경의 [금강산도] 최북의 [표훈산도]등이
있으며 정선의 영향은 소극적이기는 하나 김홍도와 이인문
작으로 이어진다. 조선후기 화단에서 정선에 이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김홍도는 [무이귀도도]에서 보여주듯
풍속화뿐만 아니라 산수화에서도 뚜렷한 자기화풍을 확립한
것을 볼 수 있다.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김홍도, 이인문에 의해 새롭게 소화되었고 이 둘은 조선말기
화단에 진경산수화풍을 전달시켜 근대에서 현대회화로
이어지면서 안중식, 조석진,
김규진등에서 이상범 , 변관식, 이용우 등으로 이어졌다. 진경산수화가 남긴 업적은 남종화풍, 풍속화의 유행, 서양화풍의 유입들 이러한 새 경향의 화풍들을 수용하여 우리 산천에 어울리는 한국적인 화법을 구축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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