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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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조각은 조소의 순수조형에 디자인 개념이 연계되는 구조를 가지고 조각의 연출, 건축공간, 조경공간 등 조각작품 외에 환경까지 고려해야 하는 학문이다. 쉽게 말해 인간의 생활환경인 도시의 가로, 공원, 녹지대나 길모퉁이에서 또는 터미널과 공항, 유원지 등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분수조각, 상징탑, 조형문처럼 전체공간의 한 구성 요소로 존재하는 조각 옥외공간에 놓여지는 모든 구조물이 바로 환경조각이다. 순수와 비순수의 구분이 무의미한 현대미술에서 두 가지의 매개역할을 하는 분야이며 따라서 환경조각은 어떠한 예술분야보다 가장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예술이라 할수 있다.

조각 작품이 설치 장소와 조화를 이룸으로써 환경과 조각 작품과의 상승효과를 추구하며 야외공간 조각의 정수를 보여주는 분야이다.


환경조각

http://www.sculpture.co.kr/sculptors/env01.html

정종구(롯데화랑 부산점 큐레이터)(lotjung@netian.com)

 *환경*

과거 서양의 액자가 필요했던 그림은 주변의 환경과 구별됨을 기본으로 하는 것과는 달리 *족자*, *병풍*의 문화권이었던 우리는 미술과 환경의 관계를 오래 전부터 이해하고 적용하였는지도 모른다. 현대적 개념의 조각이 각광을 받고 설치와 행위미술이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는 총체적 환경 개념을 미술로써 받아들인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미술의 다양한 방식 중에서 조각 등의 입체미술이 20세기 미술의 전반에 우위를 점하며 진행되었던 평면 회화를 위협하는 이유도 주변 환경에 대한 이해를 바탕에 둔 조형관 때문일 것이다. 20세기 한국미술의 변화 중에서 *환경*개념의 이해와 적용은 큰 수확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건축물에 관한 1%미술 시책과 더불어 *환경*과 *생명*이라는 인간 생존의 문제화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자연과 더불어 자연 속에서 생존하는 동양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한국의 정서가 크게 작용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과연 이러한 *환경과 관련한 미술*은 어떤 체계로 읽을 수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환경*은 단일한 의미인가? 미술에서는 *환경*이란 어떠한 요소로 받아들이는가? 등의 의문은 *환경*과 *미술*을 제대로 관계시켜 보려는 시도를 낳았다.

 환경에 관계하는 미술

*환경*과 *미술*의 관계는 첫째, 미술을 통하여 *환경 오염과 파괴*에 대한 문제 의식, 제고 등을 다루는 접근 방식. 둘째, 환경을 공간, 시간 또는 또 하나의 미술적 요소로 이해하여 미술 속에 적용시키는 형태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결코 분리될 성격은 아닌 듯 하다. 미술도 인간의 환경인 점을 고려한다면, 가시적인 자연 환경과 물리적 환경, 사회적 문화환경의 올바른 이해와 접근은 이 시대의 동일한 숙제임이 명백하다.

 ①환경미술-예술이 사회와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발전해왔음에 동의한다면, 미술인이 환경의 위기 상황에 대하여 작품을 통해 개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일깨우고 자연의 보존과 정화는 물론 인간과 공존을 이루어 나가고자 하는 의미의 환경미술은 미술의 일부 영역으로 국한 된 것이거나 일회적인 성격은 아니다. 90년대에 들어서 환경미술제, 환경 주제전 등 다양한 양상의 환경미술을 주장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여기서 환경미술이란 *환경*이라는 의미에 의해 미술의 성격이 규정 지워지는 미술양식이 *환경미술*인 셈이다. 다시말해서 "환경미술이란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전제로 문제의 극복을 위한 이론적, 실천적 작업 과정의 일환으로 예술적 매개를 이용한 미술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일부의 작가들은 전지구적 고민인 환경과 생태 문제 뿐만 아니라 사회환경의 불균형과 소외된 인간들에게까지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②환경예술(環境藝術 Environment Art)- 작품을 그 자체로서 완결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그 주변의 환경과 관계를 고려하는 경향이다. 현대의 새로운 작품은 새로운 수법의 전시형태를 요구한다. 따라서 작품과 보는 사람과의 보다 전체적인 교류를 의도하여, 보는 사람의 주위를 작품(회화, 조각, 오브제 등)으로 둘러싸고, 때로는 소리, 빛 따위도 가해서 독특하게 꾸민 환경을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다다주의자인 슈비터스 작품인 *메르츠바우*나 초현실주의의 대규모적인 전시회도 환경예술에 속한다. 그러나 환경예술이 본격적으로 시도된 곳은 미국으로, 그 기원은 이미 추상표현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경향의 작품들은 대형화되어, 관중들은 색깔을 바라보기보다는 그것에 압도되어 *경험*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관중들은 바넷 뉴먼이나 마크 로드코의 거대한 화면에 둘러싸인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같은 무렵에 건축가 프레드릭 키슬러는 회화, 조각, 건축을 결합시키는 작업을 했고, 루이즈 네벨슨은 조각을 벽 전체로 확대시켰으며, 허버트 퍼버는 *조각의 방*이란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다. 1950년대 말 몇몇 젊은 작가들은 연극적인 이벤트와 해프닝으로 눈을 돌렸다. 이런 것들은 모두 환경예술에서 발전한 형식으로, 그 연원은 잭슨폴록의 액션 페인팅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살아있는 환경 속에 실제의 인간과 실제의 대상물을 결합시킴으로써 해프닝을 개인주의적이고 고립적인 미술 작품으로보다는 전면적인 예술 환경을 새롭게 강조하는 경향으로 유도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예술관이 잘 나타난 것은 클레스 올덴버그의 *상점*이다. 그의 예술과 생활의 총체를 이끌어 내기 위해, 실제로 상점을 구입, 거기에서 작품을 제작, 상품도 진열해 놓고 판매했다. 그는 또한 거대한 기둥을 이용해서 여러 차례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이 경향의 작가들은 화랑의 전시로부터 순수한 환경으로 방향 전환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환경예술은 결과적으로 삼차원적인 형태와 거대한 규모, 그리고 건축과 풍경에 대한 새로운 공감에의 관심을 부활시켜 주었다. 그리하여 대지예술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개념미술이 탄생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③우리의 *환경과 미술*-미술과 환경은 *공간*과 *시간*을 전제로 하는 창작 과정에서 밀접하게 관계되기도 한다. 실내에서 보여지는 미술은 야외 전시장, 대지, 도시 등으로 설정 무대가 달라지므로 해서 *환경*이란 개념을 제고하게 된다. 이러한 *환경*은 일차적으로 주변의 공간 즉 장소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나, *시간*이 문제가 되면서 *환경*은 사회화하게 되고 *삶*과 연대하여 쾌적하고 적절하기를 희망하게 되는 *총체화*의 길을 걷게된다. 이는 인간에 관한 예술이라는 측면에서 당위성을 가진다. 다시 말하면 미술은 인간의 생존과 상관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인간생존의 역할 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게 된다.

여기서 한가지 참고할 것은 과거 우리 민족의 미술이 환경과 밀접하였다는 점인데, 경주남산과 화순 운주사, 언양 반구대 암각화, 태안 마애 삼존불, 팔공산 갓바위 등은 위에서 언급한 *환경*과 호흡하는 미술이 우리에게 생소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준다.

 ④조각의 개념-미술 사전적 의미의 조각을 살펴보면, 조각(sculpture)이라는 어원은 라틴어 *sculpere*에서 비롯되었으며, 이 말은 날카로운 연장을 가지고 단단한 재료를 새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어에서 연유하는 조각의 다른 표기인 *plastik*이란 단어는 좀 더 부드러운 재료를 손이나 또는 도구로 작업하는 것을 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의미를 좀 더 확대하면 *조각은 입체를 만드는 예술이다*라고 하며, 조각 그 자체가 3차원적 연장을 갖는 물체인 동시에 표현 대상도 또한 입체적 사물이라는 것이다.

 ⑤현대미술과 조각-보통 미술이라고 하면 우리는 그림과 조각을 구분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만큼 이 두 가지는 미술하면 떠올릴 수밖에 없는 대표적 분류이다. 회화와 조각은 2차원과 3차원이라는 다른 차원을 가진다. 여기에서 조각의 특성을 더 든다면 조각은 감상에 있어서 *빛*이 필수적인 요소이며, 시각에 더해져 촉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양한 형태와 공간이야말로 조각의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그러나 20세기의 초기 현대 미술에 있어서 최대 쟁점이었던 *실험성* 덕분에 전통적인 조각의 성격은 회화에 묻히고 만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의 재료와 방식의 다양성은 조각을 *조형물*로 불리게끔 만들었다. 현대미술에서 조각은 평면 회화와의 경계가 무너지고 해체되는 상황에 이른다. 불분명해진 조각의 개념을 현재의 일반적 관점으로 해석한다면 *시각 조형 예술*이 될 것이다. 실재하며 촉감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물성을 특징으로 하는 *조각*은 분명 개념 자체가 불분명해졌지만, 존재 의미의 확대로 보아도 무관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확대된 *조각*의 개념은 회화와의 구별은 무시한 채, *장소* *시간*즉 *환경*을 가진 물질 또는 미술 자체이기도 하다.

우리가 유의하는 이 확대된 *조각*은 설치나 매체미술, 환경미술, 공공미술 등으로 보여지며 변화 발전하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환경을 염두에 두며 관람객인 *인간*과의 소통 또는 대화에 지향점을 두는 총체적이라는 것이다.

 한국미술에서 조각은?

이러한 점들이 20세기 한국미술을 언급하면서 주목해야 할 부분들이다. 20세기 미술의 두드러진 특성 중 하나가 입체, 조각, 설치미술에 대한 주목이다. 이러한 점은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많은 담론과 노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인간을 둘러싼 *공간*으로서의 *환경*에 대한 주의는 입체적이고 총체적인 미술에 관심을 갖는 필연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미술에서 조각, 입체, 설치미술의 중요성은 근대화, 세계화, 자기화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조각에 나타난 현상들을 서술해보면,

1)근대화·산업화의 결과물인 폐기물의 활용과 환경 문제 제기
2)대중적 유행 이미지 등 사회적 환경의 차용과 수용
3)단순화와 절제 또는 자기화 과정
4)개별의 조합 또는 집적
5)주변 공간인 환경과 연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미술인의 다양한 시각을 통하여 접근되는 총체적 환경은 인간의 생존과 관계되는데, 인간의 생존을 향한 목적에 미술이 합의 한 것처럼 보인다. 과거에 인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거나 신에게 경배하고 자연을 예찬하던 미술, 또 사회를 고발하고 세계를 지켜보던 미술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거대한 구조 속으로 해체, 결합된 것일까?

어떤 이유에서인지 미술은 환경과 가까워졌고 적절한 매체로 조각은 주목받았으며 다가오는 21세기에는 더욱 더 중요한 위상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