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의특징


한국화란 무엇인가

서양화는 대체로 캔버스(천)에 유화 물감으로 그려진다. 두터운 종이에 수채로 그리는 그림도 있고 요즈음에는 아크릴 같은 특수 물감도 널리 쓰여지고 있다. 거기에 비하면 동양화로 알려져 있는 그림들은 주로 화선지(종이)에 먹으로 그려진다. 물론 천(마)에다 채색(안료)으로 그리는 그림도 있다.

엄격하게 말하면 서양화나 동양화에서 쓰여지는 재료에는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서양화가 오랫동안 캔버스에다 끈적끈적한 유화물감을 발라서 그림을 그렸고, 동양화가 화선지에다 먹을 쳐서 그림을 그려 왔기 때문에 이런 습관이 결국 서양화와 동양화의 특수성으로 굳어져 버린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물론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별이 단순히 재료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그림의 내용이나 형식에서 온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수묵 산수라든가, 사군자(四君子), 화조(花鳥), 어개(魚介), 금수(禽獸), 기명절지(器皿折枝) 등 이런 내용물들은 서양화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또 동양화에는 병풍이라든가 족자(걸개 그림), 부채와 같은 특별한 형식의 그림도 있다. 이런 점은 뒤에서 더 자세히 거론할 것이다.

아무튼 우리가 동양화로 알고 있었던 이런 양식의 그림들을 '한국화'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79년대 말에 들어서였다. 사실 동양화라는 것은 중국 사람들의 그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국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던 그림이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 한국, 일본, 몽고,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오랫동안 공동의 문화권에서 살았으므로 동양화는 서양화와 마찬가지고 하나의 문화권을 상징하는 그림 양식의 명칭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문화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을 때에는 그저 그림으로 통했지, 거기에다 중국화니 한국화니 일본화니 하는 명칭을 붙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근세에 이르면서 전반적으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가 서방 세계의 침략을 받으면서 국수주의적인 기상이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중국은 자신들의 그림을 먼저 중국화(中國畵)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일본은 19세기말에 이르러 그들의 그림을 일본화(日本畵)라고 불렀다. 그러나 우리는 그 뒤에도 계속 동양화라는 이름을 고수해 왔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부 화가들이 '한국화'라는 용어를 쓰게 되고 1980년대 이후에 오면서 국전(國展) 같은 데서도 '동양화'라는 이름 대신 '한국화'라고 공식적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한국화라는 명분 아래 그리는 그림 가운데는 과거의 동양화, 이른바 중국적인 영향의 그림과 구분할 수 없는 그림들이 많다. 그런가 하면 과거의 양식에서 탈피하면서 의욕적으로 오늘의 한국화를 지향하고 있는 화가들의 그림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한국인이 그린 그림은 모두 '한국화'라고 서슴없이 말하기도 한다. 천에다 유화 물감으로 그리건 종이에다 먹으로 그림을 그리건, 그런 것은 단순한 수단에 불과하지 그 자체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의 화단을 둘러보면, 캔버스 그림 속에 동양적인 요소가 들어와 있는가 하면 화선지 그림 속에 서양적인 요소가 들어와 있기도 하고 그 양쪽이 서로 섞이어 뒤죽박죽이 되어 있기도 하다. 이렇게 그림의 재료 자체가 국제화되어 있는 현실에서 서양화를 찾고 한국화를 찾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한국화'의 특수성이나 '주체성'을 강조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주장에 쉽사리 동의하지 않는다. 예컨대 그림 그리는 재료가 단순히 그림을 그리기 위한 물질적인 수단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캔버스와 화선지 또는 유화 물감과 먹은 서로 같은 값일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캔버스나 유화 물감은 그림 그리기 위한 단순한 물질적인 수단일 수 있겠으나 화선지와 먹의 경우 그렇게만 볼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기도 하다. 이 점도 뒤에서 상세히 거론할 것이다.

화선지와 먹은 과거의 동양 문화권에서는 하나의 물질인 동시에 정신적인 어떤 것이었다. 말하자면 물질과 정신이 결합되어 있는 제3의 어떤 것, 그것이 수묵 사상(水墨思想)이고 동양 사상이었다. 불과 물이 혼제되어 있는 것이 술이고 그것을 마실 때 취하듯이, 수묵도 그것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취하게 만드는 어떤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수묵에 대한 이런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서양화와 자신들이 그린 그림을 동일한 범주 속에 넣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신념만으로 '한국화'의 독자성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화선지와 먹으로 그리는 그림은 중국이나 일본은 물론 오늘의 동남아 여러 국가에서도 계승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화'란 무엇인가. 한국화는 일차적으로 동양화의 범주 안에 있으면서 중국, 일본을 비롯한 다른 이웃 나라의 그림과 같지 않는 어떤 것이라야 한다. 그러나 동양화가 먹으로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비단과 같은 천에 채색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른바 진채화(眞彩畵)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 결코 '한국화'의 정의가 간단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