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뢰겔 < Jan Bruegel >(1568~1625)

결혼잔치

농민의 춤

플랑드르의 화가. 처음에는 꽃과 과일을 주로 그렸으나, 1593∼96년 이탈리아를 여행한 후로는 인물을 작게 배치한 풍경화로 전향하였다. 1602년 안트웨르펜의 화가 조합장이 되었으며, P. 루벤스와 친교를 맺어 협력자로 일하였다. 헤이그에 있는 브뢰겔의 작품에는 루벤스가 아담과 이브를 그려넣은 것이 있다. 그의 작품은 런던의 국립미술관을 비롯하여 영국에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아들인 브뢰겔 2세(1601∼75)도 화가였다.

브뢰겔 < Pieter Bruegel the Elder >(1525~1569)


네덜란드의 화가. 16세기의 가장 위대한 플랑드르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출생·성장·수업 등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으나, 아마 네덜란드 북쪽 브라반트주 스헤르토겐보스 근방의 브뢰겔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처음에는 쿡에게, 그 다음에는 히에로니무스 콕의 제자가 되어 그 밑에서 그림공부를 하였다. 그 후 1551년 안트웨르펜의 화가조합에 등록하고, 다음 해 프랑스·이탈리아 등지에 유학하였다. 반 에이크 이래 북유럽 자연주의에서 출발한 그는 이탈리아 유학길에서 알프스의 풍경에 감명을 받고 스케치한 풍경화를 남겼는데 그 중 21점이 현존한다. 53년 귀국하여 안트웨르펜에서 제작생활을 하다가 63년 결혼, 브뤼셀로 이사하여 그 곳을 활동 본거지로 삼았다. 그의 작품은 초기에는 주로 민간전설·습관·미신 등을 테마로 하였으나, 브뤼셀로 이주한 후로는 농민전쟁 기간의 사회불안과 혼란 및 에스파냐의 가혹한 압정에 대한 격렬한 분노 등을 종교적 제재를 빌어서 표현한 작품이 많아졌다. 그러나 그 후로는 점차 구도가 단순화되고 인물수도 적어졌으며, 극적 요소를 버리고 순수하게 사실적으로 때로는 비유적으로 농민의 실상을 묘사하게 되었다. 그는 숙명적으로 대지와 깊은 인연을 맺어 그 속에서 소박하고 우직하게 살아가는 농민을 높은 휴머니즘의 정신과 예리한 사회비판의 눈으로 관찰하면서 묘사해 나갔다. 이로 인해 그는 최초의 농민화가가 되었으며, ‘농민 브뢰겔’로 불린다. 이 무렵의 것으로 현존하는 작품 중 판화에 비해 유화는 50점도 안 되지만, 그 작품들은 북유럽 전통의 사실성과 이탈리아에서 배운 엄격한 선의 묘사를 통하여 독특한 스타일과 취향을 표현하였다. 그의 작품은 빈 미술사미술관에 많이 소장되어 있는데 《사육제와 사순절 사이의 다툼》 《아이들의 유희》 《바벨탑》 등과 4계절의 농촌을 묘사한 3점의 작품(4점 중의 1점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소장) 《영아학살》 《농민의 춤》 《농가의 혼례》 등이 그것이다. 이 밖에도 베를린국립미술관 소장의 《네덜란드의 속담》, 브뤼셀 왕립미술관 소장의 《반역 천사의 전락》, 나폴리국립미술관 소장의 《맹인들》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브뢰겔 < Pieter Bruegel the Younger >(1564~1638)

네덜란드 플랑드르의 화가. 브뤼셀 출생. 브뢰겔 1세의 장남으로 주로 아버지의 그림수법을 모방하여 풍속화·종교화 등을 그렸으나 그러한 제재 외에도 겨울풍경이나 공상적 또는 괴기한 장면 및 악마이나 지옥의 장면 등을 즐겨 그려 그를 ‘지옥의 브뢰겔’이라 부르기도 한다. 대표작에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베를린국립미술관 소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