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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세계를 향한
발돋움
車 凡 錫 (예술원회원, 극작가)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우리는 두 가지 면에서 그 인상을 식별할 수가 있다. 그 하나는 별로 말은 안 하지만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의 화술이나 복식이 제아무리 세련되었다 하더라도 남을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극히 상식적이고도 일상적인 직관을 그림에서도 찾아낼 수가 있다. 바꾸어 말해서 같은 작품이면서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포근하고
편안하게 감싸주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전혀 정이 안 가고 반발심 마저 일으키게 하는 그림을 만날 때가 있다. 물론 그것은 그 작가의
개성이요，체취다. 예술관의 차이에서 나온 결과이겠지만 아물든 그림이건 사람이건 상대방을 편안하게 받아드리고，또 안아준다는 것은 매우 소중한
가치성의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시각에서 玄汀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玄汀의 그림에서는 친근감이 으뜸이다. 그가 즐겨 택하는 소재가 산과 계곡과 바다와 안개와 그리고 숲속의 초가라는 점에서는 극히 향토적이며
전원적인 세계에 갇혀있음을 스스로 극명하게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자연의 묘사가 아니라 그 속에 고향에 쏟는 끈끈한 정감과 집념이
짙게 깔려있다는데 그 뜻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남도예술의 본고장에서 南農과 雅山의 맥을 이어받아 갈고 닦아 나오는 가운데 자신의 세계를 끈질기게
추구해나온 작가의식은 하나의 혼(魂)으로 응고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작가 자신이 노상 주장해왔듯이 “전통을 살리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대상의 변화를 현장에서 포착한다” 라는 작가 정신은 곧 철저하게 한국적인 미를 채굴해 나가려는 장인기질하고도 통할 것이다.
그러므로 玄汀의 그림에는 고향의 그림자가 있고， 숨소리가 들리고，안개비가 촉촉하게 젖어오는 것 같다. 소탈하고 정감이 남달리 끈끈한 작가 자신의
성품만큼이나 자연과 밀착되고 향토와 핏줄이 이어져 어디를 가거나， 어디에 있거나 玄汀의 그림에서는 쉽사리 그것들을 느끼게 해서 좋다. 그것이
바로 玄汀의 개성이다. 그림세계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술에 있어서 개성이 없다면 이미 그것은 의미의 상실을
뜻한다. 게다가 그 작가가 소속된 민족성이 없다면 보편성도 없어지고 세계성하고도 단절된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상식이다. 가장 민족적인 것은
그 민족적 특수성을 뛰어넘어 세계적인 보 편성과 맥이 닿는다는 말을 믿는다면 玄汀의 그림세계는 남도의 향토성에서 출발하여 언젠가는 세계적인
보편성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나는 또 하나의 희열과 소망을 얻은 셈이다.
예술 전반에 걸쳐 불어오고 휘몰아가는 현대적이며 첨단적인 돌풍이나 일관성의 난무 속에서 玄汀은 뚝심 좋게 자기의 세계를 지키고 있어
믿음직스럽기만 하다.
이번 전시회가 7년만의 기획이고 보면 분명히 그의 이번 그림에도 하나의 변화와 성장과 성숙이 있으리 라 믿는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화가 빠져들기
쉬운 그 안일과 타성의 늪에서 뛰쳐 나와야 한다. 피상적이며 감각적인 변화가 아닌 미의식의 본질적인 추구와 우리 민족의 삶하고의 연계성도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곧 세계적 보편성으로 통한다고 믿는다면 말이다.
1996.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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